영미법에 이런 경구가 있다.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먼저 공격을 당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상대의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자신이 위해를 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당방위'(self-defense)의 개념이다.
우리 형법에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정당방위로서 처벌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침해의 '현재성'이다. 상대의 공격이 현재 계속된다면 문제가 없거니와 공격이 '목전에 임박한 경우'에도 현재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먼저 공격당하기까지 기다려야 비로소 상대에 반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제법적으로도 비슷한 논리가 작용한다. 유엔 헌장 51조에 규정된 자위권(right of self-defense)이 그것이다.
"무력 공격 발생 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회원국의 고유한 권리로서 유엔 헌장이 금지하는 게 아니"라는 규정이다. '무력 공격 발생'이라는 개념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공격을 당한 뒤 사후적으로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국제적 논의를 통해 '임박성'과 '비례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선제공격 혹은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도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언급한 선제타격론을 놓고 여야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화약고 안에서 불장난하는 어린이를 보는 느낌"이라며 "전쟁의 위험을 고조시키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매우 충격적 발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반응이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설명은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다. 홍 의원은 "우리 쪽으로 핵미사일 발사가 임박할 때 선제타격으로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감시위성이나 정찰비행으로 그 정황이 확실할 때는 사전에 파악된 북의 핵시설 70여 곳을 사전에 무력화하기 위해 행하는 최후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상황을 전제로 한 선제타격론이 윤 후보의 발언이었다. 조용히 있는 북한을 선제공격하자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이 후보 스스로 윤 후보를 비난하기 위해 한 말처럼 "몰라도 문제, 알고서 하면 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미사일에 이어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까지 성공한 현재는 재래식 무기가 전쟁을 주도하던 과거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핵무기를 '게임체인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극초음속 핵미사일이 1분 이내에 서울에 도달하는 경우에도 일단 공격당해야 반격할 수 있다면 홍 의원의 말처럼 "우리는 핵공격으로 궤멸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4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에서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더불어 킬체인의 조기 구축을 지시한 바 있고, 같은 해 5월 17일에는 취임 후 첫 정부 부처 방문으로 국방부를 찾아 KAMD·킬체인·대량응징보복(KMPR)을 통칭하는 한국형 3축 체계의 조기 구축을 강조했다.
킬체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동향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발사 전 선제타격하는 공격형 방어시스템이다. 북한 핵미사일 발사가 임박할 경우 선제타격하는 킬체인은 이미 우리 군 작전개념의 일부이다. 문 대통령의 킬체인 조기 구축 지시에 대해 아무도 '충격적'이라거나 '전쟁 위험을 고조시킨다'며 시비를 건 바가 없다. 대통령이 하면 문제없지만 대선 후보가 하면 문제인가. 시비를 위한 시비, 비난을 위한 비난일 뿐이다.
이 기회에 이 후보를 포함한 모든 대선 후보에게 묻고 싶다. 핵무기를 탑재한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확실한 징후를 포착했을 경우 대통령으로서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강한 유감을 표시할 것인가. 규탄 성명을 발표할 것인가. 그래도 평화를 외칠 것인가. 아니면 킬체인으로 선제타격을 하겠는가. 대통령은 그런 상황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는 회피성 발언은 사절한다.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말이지만 안보 문제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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