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뜨는 힐링 명소 저수지 한바퀴] <5>고령 중화저수지

뒤로는 가야산과 미숭산, 앞으로 낙동강 회천강, 배산임수의 명당

고령군은 지역경제활성화 및 기존 자원의 관광명소 활용을 위해 중화저수지를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중화저수지 생태공원 조감도.
고령군은 지역경제활성화 및 기존 자원의 관광명소 활용을 위해 중화저수지를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중화저수지 생태공원 조감도.
고령군은 지역경제활성화 및 기존 자원의 신규 관광명소 활용을 위해 중화저수지와 연계한 친환경 생태공원을 조성한다. 사진은 중화저수지와 생태공원 조감도.
고령군은 지역경제활성화 및 기존 자원의 신규 관광명소 활용을 위해 중화저수지와 연계한 친환경 생태공원을 조성한다. 사진은 중화저수지와 생태공원 조감도.
중화저수지의 봄.
중화저수지의 봄.
중화저수지의 물빛이 맑은 하늘과 맞닿아 시리도록 푸르다. 고령군 제공.
중화저수지의 물빛이 맑은 하늘과 맞닿아 시리도록 푸르다. 고령군 제공.

인적 드문 겨울의 중화저수지(中花貯水池)는 이름모를 산새들만 분주할 뿐 사방이 고요하다. 가끔 낫질마을로 들어가는 차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저수지를 둘러싼 골안은 여전히 한적하다.

낫질못으로 더 잘알려진 중화저수지는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과 미숭산 문수봉, 사월봉, 용수봉을 분수계로 하는 대곡천 중수부에 위치한다.

중화저수지는 동서로 길게 뻗었다. 남북의 폭은 손에 잡힐 듯하지만 동서 폭은 족히 2㎞는 될듯 넓다. 저수지 중간지점에는 우륵정(于勒亭)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중화저수지를 크게 한바퀴 도는데,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길이는 무려 5㎞에 이른다.

저수지를 한바퀴 돌고 나면 연인들은 사랑의 감정이 더 커지고,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은 가족간의 유대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중화저수지에서 고개를 들어 보면 가까이는 미숭산, 멀리는 가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주산과 금산이 있고 그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친다. 낙동강 옆으로 회천강도 나란히 흐르고 있다.

중화저수지 인근에는 4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저수지는 60여년전 4개의 자연부락이 이주한 뒤 농업용수로 담수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가야 임금님의 행차가 많았던 낫질

중화저수지는 고령 사람들에게는 '낫질못'으로 더 친근하다. 낫질의 유래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의 아들 월광태자(月光太子)와 그의 아내 무후왕후가 피난한 길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여기서 '낫'이란 비단 라(羅)에서 나온 말이 구개음화로 '낫질'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설이 있다.

낫질 출신 박동열(87·고령군 유도회장) 씨는 "대가야의 임금님들이 이 길을 많이 드나들었다 해서 나들다의 뜻을 가진 '나'와 길의 경상도식 된발음이 '질'로 불리면서 '낫질'이 됐다"며 마을 유래를 설명했다.

가야산에서 발원한 물은 미숭 장군의 전설로 유명한 미숭산이 수원이 되고 중화저수지에 다다른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이 물은 길게 실개천을 이루고 흘러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됐다.

◆관광단지로 거듭나는 중화저수지

그러나 현재 중화저수지는 밑바닥을 드러내며 말라있다. 시리도록 맑은 물을 기억하는 고령 지역인들에게 말라 있는 저수지의 모습은 낮설기만하다.

1957년 안정된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리와 저전리, 내상리, 신리 등 4개 마을을 저수지 주변 인근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저수지를 조성한 이후 단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적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화저수지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위해 저수지의 물을 완전히 빼고 있다.

수원이 워낙 깊어서 수개월째 물을 빼고 있지만 바닥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 공사를 하는 측에서는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저수지 이전 이곳을 흐르던 개천은 풍부한 수량과 건기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고 일정한 양이 개울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로인해 동네 개구쟁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됐고, 겨울철에는 등굣길에 썰매를 타고 다녔을 정도라고 했다.

낫질못 앞으로는 팔만대장경 이운길로도 유명하다. 낫질재를 넘으면 곧바로 해인사가 있는 합천군 야로면과 통한다.

강화도에서 뱃길로 고령 개진면 개경포에 들어온 대장경은 합천으로 넘어가기 위해 세갈래길을 만난다.

덕곡지역으로 넘어가는 길과 쌍림 반룡사길로 넘어가는길, 그리고 가장 중심지였던 낫질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낫질길이 가장 중심길이면서 가장 가까운길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봄, 꽃피는 중화저수지의 기억

지금 저수지는 바닥을 보이지만 지난 봄의 중화지는 깊고 푸르렀다. 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물빛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한가한 저수지 주변으로 길게 조성된 벚꽃과 앞서핀 진달래, 여기다 물안개마저 피어 오르면 중화지는 무릉도원에 비견될 만하다.

이같은 비경으로 최근 농촌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유독 이곳 저수지 인근 마을은 인구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저수지 주변에서 각종 인문학 강좌가 자주 열리고 지역 시인들의 발길이 잦은 것도 이같은 비경이 한몫했다.

이 마을 출신 이경근 전 고령군 국장은 "우리 마을 참꽃은 유달리 예쁘다. 옛날 이 지역의 총각 처녀들이 보내는 연서(戀書)에는 진달래 꽃잎을 붙여 보내는 꽃편지가 인기였다"고 말했다.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나리와 원추리, 가을이면 쑥부쟁이와 개망초를 비롯한 각종 들국화들이 못 주변을 꽉 메우고 있다.

정성스레 편지를 쓴 뒤 편지지 맨위에 마을에 지천으로 널린 진달래 꽃잎을 고히 붙여 보내면 사랑이 이어질 확률이 100%라고 한다.

옛날 이 마을 여고생이 보낸 국군장병 위문편지는 군인들에게 단연 인기였고, 이 때문에 군인들은 편지에 이끌려 마을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어떤 때는 마을 초입에 휴가와 제대군인들로 장사진(?)을 이룬 적도 있다고 이 마을 출신들은 전한다.

◆인근에는 수많은 독립투사와 인재들이 난곳

수몰된 중화저수지 상류지역은 내곡(乃谷)마을로 불렸다. 골짜기 안을 가리키는 내(內)가 아니라 이에 내(乃)자를 쓴다. 마을의 생긴 모양을 그대로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마을 생긴 모양이 마치 앞이 트인 항아리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을 전체가 동쪽 낙동강을 아래로 내려다 보듯이 펼쳐져 있다. 반풍수의 짧은 소견으로도 이곳이 배산임수의 명당이라 여겨진다.

대가야인들이 도읍지로 여기고 터를 잡은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그래서 이 마을은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남형우 선생과 파리평화회담에 독립탄원서를 보낸 파리장서 사건에 서명한 이인광, 이상의 선생, 3·1운동을 촉발시킨 2·8일본 독립선언을 한 김상덕 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철학서인 철학고변을 쓴 이인재 선생이 이 마을 출신이다.

▶▶▶〈딸린 박스〉

중화저수지가 대가야, 고령의 랜드마크로 거듭난다.

중화저수지는 현재의 모습에도 연신 관광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지만 고령을 대표하는 관광단지로 거듭나기 위해 한창 꽃단장 중이다.

고령군은 중화저수지의 자연생태계 보전과 체계적인 개발을 통해 이 지역 일대를 관광자원화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생태공원은 9만777㎡의 면적에 총사업비 98억여원을 들여 조성한다. 습지원과 산벚나무동산, 오동나무숲, 숲속쉼터, 갤러리쉼터, 잔디마당, 단풍나무숲, 암석원, 조화원, 이운순례길 쉼터, 생태관찰탐방, 바람소리쉼터, 수변쉼터 등이 들어선다.

특히 고령군, 성주군, 합천군의 지역문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테마길인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과 연계 육성, 지역자원의 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중화저수지와 생태공원은 앞으로 군민들의 뜻에 따라 '우륵공원'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며 "완공된 우륵공원의 비경이 기대된다. 봄이 오면 저수지를 따라 빙 둘러핀 벚꽃과 진달래가 풍경화 한폭 그려낼 것이고 이어 가을이 되면 맑은 하늘빛과 맞닿은 중화저수지의 푸른 물을 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화저수지의 봄
중화저수지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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