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영일만에 몸을 던져라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포스코)가 첫 쇳물을 쏟아냈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철강 신화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38년간 포항제철 제강부는 총 3억5천만t의 철을 생산했다. 선재 제품 길이로 환산하면 지구와 달 사이를 2천300번 왕복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

포항제철을 짓는 데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3배인 1천205억 원이 들어갔다. 박정희의 혜안과 박태준(포항제철 초대 회장)의 열정이 결합해 영일만에 기적의 쇠꽃(鐵花)을 피워 냈다. 쇳물을 처음 생산한 그해 포항제철은 순이익 1천200만 달러를 올렸다. 제철소 가동 첫해에 이익을 낸 세계 유일 사례다.

철강 전문 분석 기관 WSD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위 철강사로 포스코를 9년 연속 선정했다. 포스코가 세계 최고 철강사로 우뚝 서는 여정은 포항 시민들이 함께했다. 포항 사람들에게 포스코는 의미 각별한 향토기업이다. 더욱이 포스코는 국내 10대 기업집단 가운데 본사를 지방에 둔 두 기업 중 하나다.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마당에 포스코의 이런 자세는 박수를 받아 왔다.

그런데 포스코가 포항을 떠나겠다고 한다. 지주회사를 설립해 본사를 서울로 옮기고 포항에는 비상장회사인 제철소를 두겠다는 것이다. 본사 기능은 서울로 가져가고 포항에는 매연 나는 공장만 남기겠다는 발상이니 지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정우 현 포스코 회장이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데 과연 누구 좋으라고 시도하는 일인지 궁금하다.

포스코는 오너가 없다. 역대 9명 회장 가운데 7명이 본사 출신이고 최 회장도 마찬가지다. 박태준 초대 회장이 포스코를 자기 회사로 만들고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고 국민 기업 토대를 만든 덕분이다. 포항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포스코의 본사 기능을 오너도 아닌 현 경영진이 서울로 옮기려는 것은 옳지 않다.

1970년 포항제철소 건설 첫 삽을 뜰 당시 박태준은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현 경영진에게 호통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따위 생각 하려거든 우향우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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