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에 자주 깬다. 잠자기 전 스트레칭을 하거나 따뜻한 우유를 마신다. 양을 천 마리쯤 세도 안 될 때는 유튜브에 고요한 숲에 내리는 빗소리,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가운데 하나를 골라 튼다. 듣고 있으면 진짜 빗소리보다 더 진짜 같다. 아마도 내 잠의 바닥에는 장화를 신고 첨벙첨벙 뛰어놀 만큼 많은 빗물이 고여있을 것 같다.
어딘가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머리맡에 수면 ASMR을 듣고 있다는 게 어쩐지 함께 비를 맞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잠 못 드는 사람들 동호회라도 만들어 볼까 생각했는데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니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수면 음악 사이트가 있었다(역시 내가 생각하는 건 남들도 생각한다).
재미있는 건 '자야 하는 데 벌써 4시'라든가 '모두 굿밤!' 메시지가 창에 끊임없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잠이 안 오니까 댓글을 쓰고 댓글을 쓰다 보니 잠이 달아난 게 아닐까. 어쨌거나 자야 한다.
참치의 경우가 그렇다. '갑자기 웬 참치?'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잠 못 든 밤 '참치, 멈추면 죽는다'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최대시속 80km로 헤엄칠 수 있고, 해저 600m까지 잠수하며 하루 평균 200km를 주파하는 참치.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잠을 자면서도 바다를 헤엄친다. 무거운 몸 때문에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코끼리나 고래, 그리고 사람들이나 정신의 무거움이든 육체의 무거움이든 잠 속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나 보다.
'불면증'이라는 단어는 산업혁명 후에 생겨났다는 걸 아는지? 사람들은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낮에는 끊임없이 노동에 시달렸고, 잠은 밤에만 자야 했다. 8시간 숙면은 결국 인간이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에너지를 저축하는 기계적 행위일 뿐. 인간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어졌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그럼 어땠을까? 우리 인간은 밤에 8시간씩 잠자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낮잠이 오는 이유는 우리 몸 안 DNA가 분할 수면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밤에 꼭 자야 할 이유도 별로 없지 않은가. 낮에 잠이 오면 낮잠을 자면 되지만 우리에게 낮잠은 사치일 뿐이다. 왜?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나무 그늘 아래 노래하는 베짱이보다 허리 디스크로 허덕일지라도 성실한 노동자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기업들 구인란에 '낮잠 시간 보장', '해먹 및 담요 제공', '잔잔한 음악과 아로마 테라피를 갖춘 수면실 완비!' 이런 문구를 찾아볼 수 있길. 이런 상상을 하니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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