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겸손한 마음으로 맞아야 하는 한해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나저나 까치의 설날은 왜 어제였을까? 동요의 세계에서는 무슨 이야기도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국어학계에서 정설로 통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재미나게 들었다. 무속・민속 연구의 권위자인 고(故) 서정범 교수의 설이다. 원래 섣달그믐날은 '작은 설'이라고, '작은'의 순우리말 '아치'를 붙여서 '아치 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훗날 '아치'의 뜻이 상실되고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실 까치설날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라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윤극영 선생이 이 곡을 발표한 시기가 1924년 일제강점기였으므로, 양력 1월 1일 '신정'을 쇠던 일제를 까치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양력설이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 1일보다 먼저인지라 '어저께'라고 표현했다는 설이다.

일본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문명 개화를 시도했고, 1872년 태음력을 폐지했다. 그러니 설날도 당연히 양력 1월 1일이다. 일본의 많은 사람,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신사나 사찰을 찾아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이 시간 새해의 분주한 행사는 마무리를 하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낸다. 우리는 이제야 우리의 설 '구정'을 맞이해서 고향을 찾는데 말이다.

과연 일본에서는 태음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당신의 음력 생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야쿠도시'(厄年)만은 음력으로 따진다. 일생 중 큰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해인데, 우리의 삼재와는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아는 바와 같이 삼재는 띠별로 9년 주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야쿠도시는 띠가 아니라 나이로 정해진다. 이 나이가 되면 사고나 병 등이 생길 수 있고, 사업 실패 등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생기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삼재풀이와 같은 의식도 있다.

남자는 25세, 42세, 61세, 여자는 19세, 33세, 37세, 61세가 야쿠도시이다. 특히 남자 42세와 여자 33세는 '대액'(大厄)이라고 해서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그해 앞의 해에는 전조가 나타난다고 하고 그해 후에는 액운이 옅어진다는데, 마치 들삼재 날삼재의 뜻과 같다.

여기서 나이는 우리가 세는 나이와 같다. 그러니 올해는 1981년생이 42세이고, 1990년생이 33세이다. 일본에서는 평상시 '만 ○세'라고만 하니 그들에게는 생소한 셈이다. 태음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인들은 음력 1월 1일부터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계산을 번잡하게 생각해서 입춘을 그 시작의 날로 삼기도 한다. 이런 규정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에 따라, 신사나 사찰에 따라 다르다.

미신이라고 하더라도 하필이면 왜 이 나이일까. 신도학자인 미쓰하시 다케시는 "경험상 이 시기가 인생의 단락을 짓는 해"라고 했다. 일본 불교철학자 이노우에 엔료 역시 "생리적으로 신체가 일변하는 시기를 경험상 정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발음상 나쁜 뜻을 가진 숫자를 기피하면서 만든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테면 일본어에서 9는 고생의 고(苦), 4는 죽을 사(死), 3은 참혹할 참(慘)과 발음이 같다. 문화인류학자인 고마쓰 가즈히코는 "1천 년 전 헤이안시대에는 귀족이 매년 액막이 행사를 했고, 에도시대에 책력이 보급되면서 야쿠도시도 보급돼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액막이가 행해졌다"고 한다.

야쿠도시에는 신사나 사찰에서 액막이 의식을 가지고 이후의 인생을 무사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기원한다. 이것을 '야쿠바라이'(厄払い)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액운을 씻어내는 그런 의식이다. 취업, 퇴직, 결혼, 출산 등 많은 변화가 있을 시기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나이이므로 매사에 신중해야 하니 신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라는 뜻이겠다.

지구의 전 인류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모두 더욱더 겸손한 마음으로 맞아야 하는 한 해의 시작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