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매화를 좋아한 선비

정태수 서예가

정태수 서예가
정태수 서예가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 중기 상촌 신흠이 '야언'에서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매화를 두고 읊조린 글이다. 매화는 이른 봄, 모든 꽃 중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 중의 꽃으로 화괴(花魁)로 불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겨우내 기다렸던 매화를 마중하기 위해 탐매여행으로 한해를 시작했다. 그들이 매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태가 지조와 의리를 중시한 그들의 정신세계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은 한국 4대 매화로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를 꼽는다. 이는 모두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다. 또한 경북 2매로는 도산매와 서애매가, 산청 3매로는 정당매, 남명매, 분양매를 거론한다.

일찍이 매화를 사랑한 선비 가운데 북송의 임포는 인구에 널리 회자된다. 그는 항주 서호 근처의 고산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는데 호수에 조각배를 띄우고 시를 지으며 소일했다. 처소 주변에 매화를 심고 학을 자식삼아 유유자적하게 사는 은자의 삶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매화 아내에 학 아들이 있다면서 '매처학자(梅妻鶴子)' 혹은 고산처사(孤山處士)라고 불렀다. 후대에 이러한 임포의 은둔적인 삶을 오마주(존경)하고 기린 선비들이 많았다. 그는 수많은 그림과 시에 인용됐고, 처사(處士)의 대표로 각인됐다.

조선의 퇴계 이황도 누구보다 매화를 아꼈다. 평소에 매화를 매선(梅仙),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의인화하여 인격체로 대접하였으니 그의 매화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특히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모아 엮은 '매화시첩(梅花詩帖)'은 역사상 유일한 매화시집이다.

퇴계의 제자 가운데 성주의 한강 정구도 매화사랑에 유별난 선비였다. 한강은 회연초당 마당에 100그루의 매화를 심고는 백매원(百梅園)이라 명명하였으니 매화를 아끼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힌다.

매화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나가는 선비라는 뜻에서 한사(寒士)라고도 한다. 이처럼 매화에는 성리학의 이념과 군자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어서 선비들이 처소 가까이에 심어두고 봄마다 개화를 기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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