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근본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대현 스님(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대현 스님(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대현 스님(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예전에 유럽으로 여행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지금 와서 보니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먼 옛날 얘기인 것 같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 여행하며 느낀 많은 일들은 거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지만, 그 중 한두 가지 감명 깊게 남는 것이 있다.

유럽은 근본을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한다. 공해가 심해서 암이 생긴다고 예상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원가서 수술하거나 약을 먹고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름 좀 더 대비한다는 사람은 암 보험을 들어서 금전적인 문제를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유기농 채소, 자연 식품 등 좋은 음식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보통 암이 발견되고부터다.

그러나 유럽은 병이 생기고 나서의 대책이 아니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 근본적 대책을 먼저 세우고 실천해 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로 주변에는 차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야채를 심지 않고,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낼 경우 두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또한 공해의 원인을 찾아서 오존을 만들지 않는 정책을 미리 세우며, 당장 돈을 벌기위한 일보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것을 먼저 걱정한다. 좋은 환경을 잘 보존하고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한다.

춘추시대 정치가인 관자는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백년의 계획은 덕을 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

유럽에서 본 수백년 된 간판, 대대손손 가업을 잇는 모습, 집을 오랫동안 보수하며 쓰는 모습이 고풍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모차르트(1756~1791)의 집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수천년의 세월을 겪은 왕궁과 교회는 허물어진 부분만 보수해가며 오래된 유적지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만 금이 가도 전체를 부수고 재개발하려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면이 보였다.

'복은 있을 때 아끼라'는 말은 옛말이 돼가고 있다. 물론 재개발로 인한 일자리 창출과 도시의 발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폐자재와 쓰레기들은 후대에 물려줄 자산치고는 반갑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돈을 우선시해서 미래를 생각하는 점이 부족한 것 같다. 내일의 병마보다 오늘의 부를 선택하기에, 사람이 먹는 식품에 넣지 말아야 할 약품을 첨가하는 일마저 일어난다.

'권불(權不)10년 재불(財不) 3대(代)'라는 말이 있다. 권세는 10년 이상 가기 힘들고 재산은 3대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줘도 자식이 어리석으면 언제 바닥날지는 시간 문제다. 재산이 없어도 좋은 습관과 지혜로운 생각을 길러주면 권세와 재산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자손 대대로 부를 누릴 수 있다.

근본에 어긋남이 없이 옛 것을 스승으로 삼아 그 기반 위에 발전을 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미래지향적인 발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옛 것은 무시하고 새로운 것은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를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성인은 인간이 잘못해도 용서를 해주지만, 자연은 인간이 잘못하면 그 몇 배를 갚아준다'고 한다. 근본을 중요시하는 것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중요시하는 것이고, 결국 미래 지향적인 삶을 만드는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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