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그들의 이해관계' 등 아홉 편으로 속을 채웠다.
인간 내면을 깊게 파헤치는 흐름은 여전하다. 작품 대개는 정신적 공황에 빠진 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누군가와 헤어졌거나, 누군가를 여의었거나,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이다.
'살다보면 있을 법한 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겐 있어선 안되는 일'이어야 한다. 이율배반적 인지상정이다.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심정의 근원이다. 홀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이들의 스트레스는 작중 관찰자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옮아온다. 한 편으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을 읽는 내내 공감되는 불안과 불편이다.
"나쁜 일이 있었다지만 실은 그 덕분에 더 큰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다."
인신공양에서나 봄직한 구호가 아니었던가.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져주었기에 잔잔한 항해와 안정적 무역을 보장받는 것처럼. 그러나 심청이가 내 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보다 몸서리쳐지는 악몽도 없다.
표제작 '그들의 이해관계'는 다소 황당한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주인공의 얘기다. 주인공은 사고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래야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아서다. 숨진 배우자는 원래 탔던 버스를 타지 못했다. 버스운전사의 착오가 발단이었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버스운전사는 승객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배우자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다른 버스에 올랐고 그 버스는 전복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묘하다. 원래 탔던 버스는 배우자가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다시 휴게소로 향했고, 그 덕분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사고 장소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승객 전원을 살렸다. 버스운전사에게는 '기적의 버스운전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 기적은 주인공에게도 기적이었을까.

단편 '해원'은 남편을 잃고 홀로 열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공원에서 캐치볼을 하다 공을 잃어버리는 모자. 공교롭게도 급속히 번진 암세포에 생을 달리한 아빠와 추억이 깃든 공이다. 복선이었을까. 아이와 장을 보러 나선 길에 할인쿠폰 챙기는 걸 깜빡한 엄마는 아이를 혼자 잠시 세워둔 채 집으로 향한다. 독자의 전신에 싸한 기운이 스친다. 장면은 교통사고 현장으로 바뀌어있다. 트럭이 아이를 덮치고 난 뒤다.
헐레벌떡 병원으로 간 엄마. 사경을 헤매는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공을 되찾는 것뿐이라 판단한다. 공을 찾으러 야밤에 공원을 샅샅이 뒤진다. 원통한 마음을 푼다는 '해원(解冤)'이라는 말과도 같았던 엄마의 이름 역시 복선처럼 보인다.
가장 최근에 쓰인 단편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의 주인공은 재임용 계약을 앞둔 시간강사다. 여기서 그는 학내 분쟁의 관찰자로 등장한다. 한 역사학과 교수가 강의 도중 학생에게 "자네 혹시 중국인 학생인가"라고 했다는 이유로 학생회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목도한다.
인권 감수성을 부르짖는 학생회 학생들은 순수한 분노로 포장해 역사학과 교수가 평소에도 강압적이었다는 프레임에 가두고 빈정댄다. 그러나 떼뭉쳐 핏대를 세우는 그들은 한편으론 폭력의 가해자다. 유학생을 배려하려고 질문한 것을 차별적 발언이라고 훌닦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폭력적인 것인가.

김녕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작가에게 인간은 목전의 현실만을 견뎌내는 존재로 정의된다. 저 좋을 대로 기억을 편집하고, 남의 말을 곡해하며, 단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으며, 자신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것이 모두 눈앞의 상황을 견디는 '상황주의자'의 방어기제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추리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는 구성이 적잖다. 작품 하나를 다 읽고, 맨 앞으로 돌아가 다시 전체를 훑어나가는 자신을 발견해도 당황해선 안되는 까닭이다.
단편 '이해 없이 당분간'과 '예정'도 길이가 짧을 뿐 압축적인 메시지와 속도감 있는 전개는 온전하다. 특히 '이해 없이 당분간'을 읽노라면 헤어진 연인의 심리를 공감하게 되는데,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숱하게 '이별'을 소재로 활용한 까닭을 이해하게 된다. 26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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