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을 훌쩍 뛰어 넘는 선수에게 함성이 터지는가 하면, 첫 출전의 긴장감이 역력한 선수에겐 격려의 박수가 쏟아진다.
재주 많은 반려견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대회가 있다. 견공들의 올림픽이라 불리우는 어질리티 대회는 개와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정해진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 경기다. 허들을 넘고 터널을 통과하는 1분 남짓 레이스는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20일 막내린 베이징 올림픽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짜릿함이다.

◆ 연습량 따라 대회성적 좌우
"데뷔하자마자 1등을 했다고요? 비결이 뭔가요" 올림픽 스타라도 만난 듯한 기자의 들뜬 질문에 견주 정빈 씨가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허정빈 씨와 그의 반려견 로빈은 작년 어질리티 대회 비기너 부문에서 1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어질리티 대회 초심자였던만큼 주변의 관심도 높았다. "비결이라고 하면… 1%의 운동신경과 99%의 노력이죠(웃음)"
어질리티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체력과 활동량이 높은 견종에게 적합하다. 보더콜리, 셔틀랜드, 쉽독, 잭러셀 테리어가 이에 속한다. 그야말로 운동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들이다. "로빈도 보더콜리기 때문에 어질리티에 쉽게 입문했죠. 사람도 다리 길쭉하면 달리기 시키고, 유연하면 체조 시키고 그러잖아요" 물론 견종의 제한은 없다. 활발하고 달리는 것을 잘한다면 어질리티를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 어질리티 대회에서는 말티즈나 치와와 같은 소형견들도 종종 입상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노력이다. 어질리티 대회는 연습량이 성적을 좌우한다. 정빈 씨와 로빈은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어질리티를 배웠다. 어질리티는 기술과 장비가 갖춰진 곳에서 배워야 하는데 전국에 10곳 내외 뿐이다. 이마저도 서울, 경기, 수도권에 밀집 돼 있어 지방에 있는 반려인들은 환경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레슨비는 1회 2시간에 평균 10~20만원이다.

"자식 운동 시키는 거랑 비슷해요. 돈도 많이 들고, 부모가 계속 따라 붙어서 케어해줘야 하고… 견주도 함께 뛰어야 하니까 사람 운동시키는 것 보다 더 힘든것 같기도 하네요" 어질리티 대회는 개와 사람이 한 팀을 이루는 경기다. 개가 허들을 넘고 터널을 통과할때 옆에서 경로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가 바로 핸들러다. 핸들러는 장애물이 있는 방향으로 개를 인도한다. 대부분 견주가 이 역할을 한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땐 숨도 차고,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로빈과 같이 뛴다는 생각에 저도 왠지 신이 났어요" 어질리티는 핸들러와 반려견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핸들러도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 교육은 장애물을 넘는 개 옆에 핸들러가 같은 방향으로 뛰면서 간식이나 장난감을 보상해주며 진행된다. 뛰는 것을 좋아하는 개의 본능을 이용하는 셈이다.

◆ 어질리티 대회 현장 모습
"처음 나간 대회에서 1등이라니. 정말 짜릿했죠" 작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로빈은 총 5번 대회에 출전, 3번의 우승 을 했다. 어질리티 대회는 비기너, 노비스, 인터미디어트, 어질리티 (레벨1·2·3) 점핑 (레벨 1·2·3) 으로 나눠지는데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넘어야 하는 장애물 순서가 많아지고 수행해야 하는 장애물도 다양해진다. 어질리티 장애물은 허들, 터널, 도그워크, 시소, 에어프레임, 워브폴, 스프레드, 허들벽 등이 있다. 비기너는 이런 장애물이 10개 이내이지만, 레벨 1부터는 넘어야하는 장애물 수가 최소 20개가 넘는다.

"오전 9시부터 대회가 시작되고 저녁 6~7시가 되면 끝나요. 로빈은 4종목에 출전했는데 보통 대회를 뛰는 시간은 다 해봤자 5분 이내에요" 나머지 시간은 다른 참가자들이 뛰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기다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대기시간에 주변을 산책하거나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어 출전견들은 크게 지루해하지 않는다. 대회장 한 켠에 출전견 화장실도 따로 구비되어 있다. 사료는 보통 아침 일찍 먹이거나 대회가 끝나고 먹이는데 배부른 상태에서 빠르게 뛰면 체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5번의 대회 참가 경력이 있는 실력자 로빈도 실수는 한다. 최근 대회에서 4종목에 참가했는데 3종목은 아쉽게 실격을 했다. "로빈이 대회에 몇번 참가하더니 대회장에만 가면 거의 폭주하다시피 빠르게 뛰어 컨트롤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대회는 나가지 않고 정확도를 올리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어요"
◆ 대회중에 대소변? 실수도 많아요
어질리티 대회는 허들을 떨어뜨리면 5점 실점, 코스 순서를 잘못 넘으면 실격이다. 이렇듯 정확한 규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간혹 심판이 이를 못 보거나 혹은 순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올림픽 같은 편파 판정은 한번도 없었어요 (웃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대회장 안에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부정판정이나 편파판정은 사실 불가능하다.

빠삐용이나 말티즈 같은 귀엽고 앙증맞은 친구들이 참가할 때면 특히나 눈길이 간다. 짧은 다리와 체형을 극복하고 상까지 타낸다면 대회는 그야말로 잔치날이 된다. 견종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에 따라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에는 모두의 축하를 받는다고. 가끔 시바견도 출전하는데 이 녀석들은 출발을 하자마자 링 밖으로 탈주를 해서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준다고 한다.
출발 신호도 없었는데 제멋대로 뛰다가 몇 초만에 실격을 당하는가 하면 중간에 멈춰서 대소변을 누는 바람에 실격 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심판을 보고 짖어서, 경기링 밖의 사람들이 좋다고 꼬리치다가, 장애물을 넘지 않고 경기장 안에서 뛰어다니다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로빈도 흥분해서 폭주를 하는 바람에 장애물 순서를 제멋대로 넘어 실격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견공들의 올림픽에는 화를 내거나 우는 선수가 없다.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강아지는 신나서 달리고, 견주는 마냥 귀엽다고 웃는다. 순위에서 벗어나 함께 어울리며 오롯이 게임을 즐긴다.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고개숙이고, 실수라도 하면 죄인인 마냥 풀이 죽어있는 우리네 선수들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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