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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지음/ 난다 펴냄

천안함 인양작업 모습. 매일신문DB
천안함 인양작업 모습. 매일신문DB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서해에서 폭침으로 배가 가라앉고 46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천안함 사건이다.

당시 수많은 언론은 침몰한 배와 숨진 장병에 초점을 맞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날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에 집중했고 진영을 나눠 다퉜다. 숨진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한 존재로 기억됐다.

하지만 그곳엔 살아남은 58명의 병사도 있었다. 그들은 패잔병이라는 부당한 낙인과 편견,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이 책은 그날 살아남은 생존 장병들이 이후 10여 년 동안 겪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보건학자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트라우마를 보살폈던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썼다.

지은이는 2018년 한겨레신문과 함께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를 벌였다. 생존 장병 24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태조사에서 91.3%가 한 번이라도 PTSD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58.3%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이 중 29.1%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또는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미군 가운데 2001~2005년 PTSD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이 13%였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가 그들의 상처를 오히려 덧나게 했다고 진단한다. 특히 생존자의 95.5%가 군에서 '패잔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패잔병이란 낙인이 이들을 더욱 괴롭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참사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봤다.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한 생존 장병은 "보수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고 떠올렸다.

지은이는 말한다.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이 사건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돼야 마땅하다거.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을테니까요." 26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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