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계체전 70세 스키어 권용정 전 교수 "도전할 수 있어 스포츠가 아름답다"

지난달 25일부터 강원도 일대에서 열린 동계체전 최고령 참가자
스키 알파인 4개 종목, 10위권 성적, 80세까지 경기나가고 파

올해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스키 알파인 종목 대구 대표 권용정 전 경북대 교수(70)와 최연소 대구 대표 이우주(8·영신초 1학년). 대구스키협회 제공
올해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스키 알파인 종목 대구 대표 권용정 전 경북대 교수(70)와 최연소 대구 대표 이우주(8·영신초 1학년). 대구스키협회 제공

"도전할 수 있기에 스포츠가 아름답습니다."

지난달 25일부터 4일 동안 강원도와 경북 등지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참가한 17개 시·도에서 참가한 4천800여명 중 단연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스키 종목 대구 대표로 나선 최고령 동계체전 참가자 권용정 전 경북대 교수. 올해로 만 70세인 그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아들·손자뻘 되는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80세를 넘어 힘닿는 데까지 스키를 타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동계체전 스키 알파인, 10위권내 선전

올해 전국동계체전 스키 알파인 남자 일반부 대구 대표로 나선 권 전 교수는 스키 알파인 4개 종목을 모두 완주하며 대회전 6위, 회전 10위 등 모두 10위권 내 진입을 달성했다.

스키 알파인은 회전, 대회전, 슈퍼 대회전, 복합 등 4개 종목이 있다. 최고 시속 120㎞ 이상으로 급선회하며 내려오는 스키 알파인은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번 동계체전에는 학생부와 일반부 모두 합쳐 250명이 스키 알파인에 출전했다. 남자 일반부 출전 선수만 100명이 넘는다. 이중 결선에 출전해 10위권 내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권 전 교수의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사실상 상위권의 선수들은 국가대표 상비군, 프로선수들이다. 나이가 무색할만큼 출중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완주에만 목표를 두고 출전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갑자기 날씨가 안 좋아져서 앞서 선수들이 탈락하는 일도 많았다. 무사히 종목을 완주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권 전 교수는 2003년부터 대구 대표 스키 선수로 활약해왔다. 전국동계체전은 2009년부터 출전했다.

그는 "아들이 2002년 스키 신인대회 1위에 오른 이후 다음 해부터 나 역시 대구 대표 스키 선수로 등록돼 활동해왔다. 2009년부터 전국동계체전 출전을 시작해 스키 알파인 전 4개 종목에 나섰다"며 "첫 대회 때부터 목표는 '안전하게 타면서 끝까지 완주하자'였다. 2013년 동계체전에선 5등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그의 나이를 넘어선 도전은 대구스키협회 소속 어린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이번 동계체전에 최연소 참가자는 이우주(8·영신초 1학년)로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종목 모두 완주했고 최예린(시지중 2학년)은 회전 및 복합 2관왕, 박준우(대륜고 2학년)는 회전 금메달 등 권 전 교수의 뒤를 이은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스키와 운명적 만남

권 전 교수가 스키를 처음 접한 것은 경북대 1학년 재학 중이던 1972년이다. 당시 대학 산악부였던 그는 설악산 겨울 등반을 마친 후 하산 중에 진부령 눈밭에서 스키를 타고 훈련 중인 군인들을 본 뒤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북한 공작원 김신조 사태가 벌어지고 난 뒤 산악 스키부대가 창설돼 훈련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스키장은 고사하고 스키 종목 자체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다. 스키부대가 진부령 밑에서 훈련하는 거 보고 '이거다' 싶었다"며 "또 산악부실에는 지도교수님이 가져다 둔 일본 산악스키 월간지도 있어 관심을 갖고 보게 됐다. 70년대는 일본에서 산악스키붐이 일어날 때라 일본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스키에 푹 빠진 권 전 교수는 매년 겨울 방학 때마다 민박집을 잡고 진부령과 대관령 눈 밭에서 스키를 탔다.

그는 "스키 장비도 굉장히 비쌌다. 대학 등록금 2배가량 되는 가격이었다. 겨울이지만 난방도 하지 않는 등 허리를 졸라매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장비를 구입해 대관령으로 향했다"며 "지금처럼 제대로 조성된 스키장이 아니라 정말 산악 골짜기 지역이었다. 200~300m 되는 경사길에 물을 뿌리거나 다지면서 직접 눈 길을 만들어 스키를 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먼저 스키를 타던 사람들과 같이 민박하면서 정말 즐겁게 탔다. 내 기억상으론 정몽준 전 회장도 한 번씩 대관령에 와서 같이 스키를 타곤 했다"며 "스키 타는 법은 일본 교재를 해석해 가면서 터득하기도 했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스키 선수였던 아들과 훈련을 같이 다니며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는 "당시 훈련하면서 만났던 스키 선수들은 지금은 다들 은퇴했거나 코치 및 대학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아직까지 경기에 나서는 것은 나뿐"이라며 웃었다.

올해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스키 알파인 종목 대구 대표 권용정 전 경북대 교수(70·왼쪽)가 동료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스키협회 제공
올해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스키 알파인 종목 대구 대표 권용정 전 경북대 교수(70·왼쪽)가 동료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스키협회 제공
권용정 전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대구스키협회 제공
권용정 전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대구스키협회 제공

◆체력은 자신, 세계 최고령 스키어 도전

그의 이력인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와 스키를 연관 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권 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그는 한국곤충학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국내 곤충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통한다. 2018년 퇴임까지 매년 곤충을 조사하기 위해 유럽 알프스 등지로 해외출장을 다녔고 논문 연구와 조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스키를 탔다.

"곤충 중에서도 오지나 극한의 환경에서 발견되는 곤충들을 주로 연구해왔다. 자연히 만년설이 쌓인 고도 3천500m 이상의 알프스 산악 지형들을 탐구했다"며 "마침 산악스키 타기에도 좋은 곳들이다. 연구와 스키 연습을 병행하며 지내왔다"고 설명했다.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당시 83세의 노인이 대회에 참가한 것을 보고 자극받기도 했다. 히말라야에서는 90세에도 전 가족이 함께 즐겁게 스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는 "미국 일반 아마추어 경기에는 80대 선수들이 출전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산을 꾸준히 탄 덕분에 체력은 자신 있다. 우선 목표는 앞으로 10년 더 80세까지 탈 생각"이라고 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