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정상회담에서 지각하기로 악명 높다. 각국 정상들이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몇 시간 푸틴을 기다리는 수모를 겪었다. 2014년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무려 4시간 15분이나 푸틴을 기다렸다. 외교가에서는 '푸틴 타임'(Putin time)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푸틴의 지각은 고의성이 짙다. 상대국 정상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회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하다. 러시아와 껄끄러운 나라일수록 푸틴 타임이 길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당시 대통령 야노쿠비치도 정상회담에서 푸틴을 4시간 동안 기다렸다.
푸틴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술수에 능한 정치인으로 통한다. 1999년 이후 20여 년 집권하고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까지 열어 놓은 그인데 정치적 술수와 정적에 대한 가혹함이 없는 게 더 이상하다. 푸틴은 명목상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 당선됐지만 부정선거 논란과 정적 탄압, 암살 의혹 등으로 서방세계로부터 사실상 독재자로 간주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푸틴은 며칠 안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과 세계 각국의 지원 및 초강력 압박으로 러시아가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서방의 경제적 제재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얕보고 서방의 결집력을 과소평가했다. 주도면밀하다던 푸틴이 이런 패착을 둔 것은 장기간 독재로 인한 판단력 저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변화시킨다. 특히 이성적 판단력과 공감 능력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장기 집권할수록 건전한 비판 세력이 사라지고 주변에 아첨꾼만 남는다. 지도자가 무리수를 두는 것을 제어하는 민주적 견제 장치가 없으니 폭주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미국과 패권을 다투던 G2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푸틴은 옛 소련의 영광 재현을 무리하게 꿈꿨고 그 결과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사의 어떤 전환점이 될지 예단키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푸틴 시대 종언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시아 국민들의 인내심도 바닥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