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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석민]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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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따로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란 전쟁마저 터졌다. 주요 석유·가스 공급처인 중동(中東)에서의 전쟁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특히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수출해야 먹고살 수 있는 대한민국은 글로벌 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다.

이 와중에 노동계는 '주 4.5일제 근무' 도입과 더불어 내년도 최저임금(最低賃金)으로 올해보다 14.7%나 인상된 1만1천500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할 수만 있다면 최저임금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고, 일은 되도록 적게 하면서 임금은 많이 받으면 좋다. 현실에선 이런 모순(矛盾)이 수용되거나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려운 탓에 이런 사람들을 향해 '놀부 심보'라고 한다.

더군다나 조직화(組織化)된 노동자들의 요구에 의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그들보다 훨씬 취약한 노동계층의 생계 수단인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죄악(罪惡)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낳은 비극(悲劇)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알바생 3명이 교대로 근무하던 단골 카페는 주인 아주머니와 알바생 1명이 얼굴이 반쪽이 된 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2026년 최저임금이 인상될 경우 ▷신규 채용 축소(67.7%) ▷인력 감원(52.9%) ▷근무 시간 단축(43.3%) 등의 응답이 나왔다. 사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온전하게 이득(利得)을 볼 노동자는 부담을 하청업체나 국민 경제에 떠넘길 수 있는 대기업 또는 공공 부문에 엮여 있는 일부 비정규직 정도가 전부다. 물론 이들의 임금과 처우도 개선되어야 하지만, 자신들보다 더 취약한 노동자를 향해 '너 죽고 나 살자'는 방식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주의에 비춰 보더라도 도리(道理)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인 '주 4.5일제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이 미국의 57%, 독일의 65% 수준이라는 주장은 차치(且置)하자. 노동계 말처럼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은 높아진다. 국가 경쟁력이 실질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수치상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이른바 '꼼수' 생산성 증가이다.

주 4.5일제가 도입될 경우 그 혜택(惠澤)이 누구에게 돌아갈까를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다. 노동자 모두가 수혜를 본다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한국 전체 노동자 중 서비스업 종사자 비율이 75%에 육박한다. 현실적으로 주 4.5일제 혜택을 받기 어려운 서비스업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비율이 아주 높다.

게다가 노동 조건이 열악한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4년 기준 전체 사업장의 84.7%, 전체 노동자의 36.3%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주 52시간제, 연차휴가, 유급휴일 등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이들에게 주 4.5일제 적용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전체 노동자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노동자의 소득 저하 및 고용 불안이 오히려 높아진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 노동귀족(勞動貴族)을 위한 주 4.5일제 도입보다 시급한 것은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 일거리가 많을 때 많이 일하고, 적을 때 충분히 쉬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노동 약자를 위해 노동운동을 한다'는 거짓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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