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환된 국제여단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821년 그리스 비밀결사 '필리케 헤타이리아'(동지회)가 오스만튀르크의 400년 지배 사슬을 끊으려 봉기했다. 그리스 독립전쟁(1821~1829)이다. 이집트가 오스만튀르크를, 러시아·영국·프랑스가 그리스를 지원했다. 그리스 측에는 외국인 의용군도 있었다. 당시 유럽은 그리스 문명 흠모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를 타고 수많은 지식인, 예술인, 귀족 등이 직접 전투에 뛰어들거나 군자금을 댔다. 스페인 내전(1936~1939) 때 명칭이 생겨난 '국제여단'의 원조다. 당시 시인으로서 절정기에 있었던 영국의 조지 고든 바이런도 그 일원으로, 36세 되던 1824년 그리스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반란군과 싸운 국제여단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 지도 조직 코민테른이 기획했다. 프랑스 공산당 기록에는 당시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모리스 토레즈가 코민테른에 국제여단을 처음 제의했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내전 중 53개국에서 온 3만2천~3만5천 명의 민주주의자·자유주의자·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무정부주의자 등이 '파시즘 분쇄'를 위해 싸웠다. 처칠의 조카로 자유주의자인 에스먼드 로밀리도 그 일원이다. 하지만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히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에 지원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수도인 마드리드 방어전을 비롯해 내전 내내 거의 모든 전투에 투입됐는데 희생이 매우 컸다. 전투 경험이 없는 데다 기초 군사훈련까지 부족했던 이상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파시즘에 맞선 그들의 희생은 인간 양심의 표상(表象)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만행이 국제여단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특수부대, 참전용사, 소방관 출신 베테랑은 물론 평범한 대학생과 직장인까지 대(對)러시아 전투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세계 수호에 동참하고 싶다면 우크라이나에 와서 러시아 전범과 맞서 싸워 달라"며 국제여단 창설과 의용군 모집을 알렸다. 세계인들이 이에 응답하고 있다. 이들의 '양심'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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