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6시부터 실시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사전투표 과정은 민주주의 선거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실·엉터리 선거였다.
3일 확진판정을 받는 바람에 부득이 이날 서울 마포구 아현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장을 찾았던 기자가 '확진자 사전투표 과정의 전말'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하지 않았다면 기자는 '집권여당 지지층이 아닌 집단의 불만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지도 모른다.
이 정권 출범 때부터 '투·개표 과정에 조직적인 불법·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해오는 사람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 비확진자와 겹치는 동선
기자는 일찍 투표를 마치고 싶은 마음에 오후 5시쯤 투표장에 도착했는데,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비확진자 투표장은 실내 3층이었고, 확진자 투표장은 건물 바깥에 마련된 허허로운 공간. 길게 늘어선 양쪽 줄 간격은 1m 정도. 비확진자들은 투표를 마치고는 확진자가 늘어선 줄을 뚫고 귀가해야만 했다. 서로간에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확진자들은 강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바깥에서 2시간이상 줄을 서 있었다.
◆ 부실한 투표장 운영
실내에 있는 비확진자 투표소는 기표소가 4곳 이상 마련돼 있는데다 선거종사원들이 많아 투표자들이 별로 기다리지 않고 투표를 한 반면 확진자 투표소에 마련된 기표장은 바람불고 추운 바깥의 테이블 2개에 근무인원도 단 2명. 테이블에서는 미리 나눠준 신원확인서와 신분증을 받아서 개별 봉투에 집어넣고 5, 6매가 모이면 선관위 직원 및 참관인이 3층에 있는 비확진자 투표장에 가서 선거인명부를 확인한다. 그 다음 투표용지를 받아 다시 내려와서 당사자를 호명하면 투표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렇게 하다보니 1명이 투표하는데만 걸리는 시간이 빨라도 10분. 길게 늘어선 줄까지 합치면 대부분 2시간이 넘게 걸렸다.(기자가 투표를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20분이었다.)
여기다 6시 시작된 투표는 찬바람이 불고 날까지 어두워지자 현장이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렸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투표 관리 인원을 늘리든지 비확진자 투표가 끝났으니 투표장을 그 곳으로 바꾸자"고 요청했지만 그곳 관계자들은 "중앙선관위 지시 사항"이라는 이유로 아예 무시해버렸다. 투표장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참관인도 제대로 없고,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마저 없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 무용지물 신원확인 절차
이런 과정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자는 모자 및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마스크는 물론이고 모자만이라도 벗어보란 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남의 신분증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리투표가 가능한 구조였다. 일손이 달리는 공무원들이 안쓰러운 생각에 항의를 자제하는 시민들이 다수이긴 했지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게 무슨 투표냐!", "민주주의하는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투표냐!"
◆ 부실한 기표소 관리
기표소에 들어간 사람은 투표용지 촬영 등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날 기표장을 감독하는 사람이나 시스템은 전무했다. 형식적인 신원 확인절차를 거쳐서 비확진자 투표장을 오가며 투표용지를 받아 나르는데도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실제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어도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이 기표소에는 조명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날이 어둑해지자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간이전등을 설치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전등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자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고 있는데도 몇몇이 급히 기표 테이블 바로 위에서 작업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 사라져버린 투표용지와 신분증
수기 번호표를 나눠주면서 간신히 유지되던 줄은 날이 어두워지고 선관위 직원들의 일처리 미숙이 겹치면서 급격히 허물어졌다. 3층 비확진자 투표소에서 갖고 오는 투표용지 순서와 기존에 받았던 번호 순서가 뒤바뀌면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사람들은 뒤쪽 번호 사람들이 먼저 투표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격렬히 항의했고, 투표장은 급속도로 혼란스러웠다. 이 와중에 투표용지와 신분증이 분실되는 일도 벌어졌는데 기자의 신분증과 투표용지도 없어져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투표용지를 받지 못해 직원들에게 문의했으나 '기다려라'는 말 뿐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해결이 안돼 관계자를 앞세워 비확진자 투표소에 들어가 책임자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그랬더니 다시 십여분이 지나 누군가 내 투표용지와 신분증을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역외투표를 하는 내 투표지 봉투의 주소가 달랐다. 이의를 제기했더니 그 자리에서 다시 주소를 인쇄해서 봉투를 내밀었다.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해도 문제없단 말 뿐이었다.
확진에 따른 설움과 추위에 떠는 시민들에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있는 설명을 하지못하자 투표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서 "그렇잖아도 확진이 돼 힘든데 왜 우리를 죄인 취급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 주부는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겨울밤 추위에 투표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조차 막을 수 없는 곳에 투표장을 만들어놓다니 이게 사람사는 나라냐. 이것도 문제지만 부실한 투표장 관리를 보면서 과연 공정한 선거가 될지 심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