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생활이 대세가 된 요즘의 복(福) 중에 '이웃복'이란 게 있다. 어떤 이웃이냐에 따라 집의 가치가 달라진다. 층간소음으로 폭언이 오가는 건 약과다. 성범죄자가 근처에 산다면 공포가 따로 없다. 이사 전 이웃집 정보까지 살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집이란 게 그렇다. 평안이 담보돼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가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웃으로 시민들과 만날 날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보수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환영 이벤트도 예고돼 술렁이는 분위기다. 이런 기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보수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는다. 하지만 집이란 모름지기 쉼터여야 한다. 집을 생존권과 직결시키는 까닭이다.
이사가 잦지 않던 때는 집이 곧 고향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이었다. 안동 예안, 임하 지역 수몰민들은 아직도 안동댐과 임하댐을 보면 눈시울을 붉힌다. 고향집이 있던 곳을 가늠하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 준공된 지 30~40년이 지났어도 고향의 기억은 생생하다. 고향 땅의 정취는 물론 이웃과 가족들의 안락했던 추억들이 덩어리째 몰려와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임하댐 아래 잠긴 임동면 박실마을 출신 유안진 시인은 마음이 힘들 때 찾고 싶은 안식처로 옛집을 꼽기도 했다.
허물어진 집을 복원해 상실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안동의 임청각이다. 1941년 일제는 중앙선 철로를 부설하면서 임청각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임청각 복원을 약속했다.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구호가 나왔다.
울진 산불로 집을 잃은 이들의 눈에서 실향민의 상실감을 읽는다. 이들은 집과 작별할 시간도 없었다. 오히려 집이 화마 속에서 허물어지는 걸 봐야 했다. 집을 잃는다는 건 재산적 멸실만 뜻하는 게 아니다. 살아온 생애가 녹아내리는 트라우마다. 300여 채의 집을 잃은 울진 군민들에 대한 지원에도 마찬가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들의 생애가 조금이나마 복원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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