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기의 모습을 보면 임기 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8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한 말이다. 노트북을 펼치며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이 말을 곱씹는데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1. 윤 당선인 측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때부터 운영해 온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있다. 22일 현재 참여자만 854명에 달하는 일명 '소통방'.
18일 오전 이곳에 기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인수위 현판식이 열렸는데 여기 몰려든 취재진이 현장에서 인수위로부터 돌연 '풀 취재'(공동 취재) 통보를 받고 허탕을 치면서다.
이 같은 미숙한 업무 처리를 지적하는 글이 잇따라 '소통방'에 올라오자 운영자는 모두 '가리기' 처리했다. 이에 A기자는 "소통방인데 의견 좀 올렸다고 메시지를 가려 버리는 것이 소통이냐"고 꼬집었다. 이 메시지도 이내 가려졌다.
B기자는 "AI가 가리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대선 기간 'AI(인공지능) 윤석열'을 겨냥한 듯. 이 역시 가려졌다.

#2. 윤 당선인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한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윤 당선인은 기자들과 날 선 공방을 벌였다.
C기자는 '선거 과정에서 소통을 강조했는데 이 사안에 대해 국민 여론이 안 좋으면 철회할 계획도 있느냐'고 묻자 윤 당선인은 "청와대 나오고 국민에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했고, 많은 국민이 좋게 생각하면서 지지를 보냈다"며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이게 조선 총독부터 100년 이상을 써온 데다. 그래서 저는 이 장소는 국민께 다 돌려드리고 국립공원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D기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겠다고 했는데 국민 반대에도 그런 결단을 하는 것이 제왕적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윤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을 제왕적으로 한다는 말씀이신데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 벗어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시계를 또 되감는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신의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할 게 아니라 국민이 궁금해하고, 억울해하는 일에 대해 진솔하게 답해야 한다"는 지적(2020년 9월 9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5년 간 가진 기자회견은 국민과의 대화(2회)를 포함해 사실상 10번이 전부였을 정도로 빈도도 저조했다.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브리핑, 간담회, 기자회견 등을 모두 합쳐 각각 150회가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회가 넘는데 말이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보수 정당 지지층에게 지독한 '불통과 독주'로 인이 박였다. 소통은 공간이나 구호가 아니라 태도, 인식임을 지난 5년이 입증한 셈이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윤 당선인으로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목이다.
부디 5년 후에는 '초기 모습은 어설펐지만 갈수록 좋아졌어'라고 반추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러려면 차기 정권이 '소통'이라는 말을 '의무 방어전'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 변화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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