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가면 안돼요?'
평소 이용자로 친하게 지냈던 아이가 썼던 편지의 첫 마디였다. 계약직 사서로 근무하던 시절 나를 무척이나 잘 따르던 아이는 이번 주 근무가 마지막이라는 말에 편지를 건네주며 울었다.
집에 매주 구피와 새우가 몇 마리가 더 생겼는지도 알고 집에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도 말해주던, 유대관계가 끈끈한 그런 아이였다. "꼭 나중에 선생님 일하는 도서관으로 놀러와"라고 서로 약속하고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가끔 지칠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되돌아보면 나를 사서로서 가장 크게 성장시켜준 요소 중 하나는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겉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에 좋고 싫고를 얼추 구별할 수가 있다. 물론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때론 지칠 때도 있고 아이들과 비슷한 정신연령으로 노는 탓에 이용자들에게 한 번씩 혼난 적도 있지만, 자그마한 손으로 주는 사탕 한 알이나 장난치는 쪽지, 소소한 선물들, 책에 집중하고 사소한 농담에 즐거워하는 얼굴과 함께하는 호흡하는 시간은 나를 한층 더 성장케 했다.
이후 다른 업무를 맡으며 한동안 이런 감정을 잊고 지내던 중 도서관에 자주 오는 중학생 친구에게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정말 재밌게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라는 소설을 추천해준 적이 있다. 주인공 '이라부' 박사의 독특한 치료법이 환자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그저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책이다. 다행히도 재밌게 읽었다는 말과 함께 작은 공책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는 그 친구를 보며, 뿌듯함과 동시에 '내가 그 시절 느꼈던 경험들을 공유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겠구나'라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했다.
"아 그러면 책 많이 읽을 수 있어 좋으시겠다. 좋은 직업이네요."
내 직업이 '사서' 라고 소개했을 때 대부분 듣는 말, 또 현직에 있는 모든 사서도 한번쯤 들었던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서'(司書)들은 점점 변해가는 도서관의 역할에 맞춰, 또 여러 이유로 인해 직업의 본질인 책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씩 내 직업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물론 양질의 문화프로그램으로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당연한 역할이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되돌아보면 가장 의미있던 순간은 책을 매개로 하여 이용자들과 함께 호흡했던 그 많은 추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매개로 사서와 이용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 아무 근심과 걱정없이 즐겁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 되길 희망한다.
권순걸 태전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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