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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또 다시 도적떼가 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한강공원에서 반려견 토리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한강공원에서 반려견 토리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헌 신문국 부국장
이상헌 신문국 부국장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페이스북 계정을 열자 그와 함께 등장한 반려견 '토리'가 덩달아 화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같은 이름의 반려견을 키우기 때문이다. 원래 주인이 돌보지 않고 내다 버린 유기견이었다는 '견생역전' 스토리마저 공통점이다.

이쯤 되면 무속을 믿지 않더라도 '퍼스트 도그'에겐 뭔가 남다른 면이 있을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든다. 무슨 연유에서 토리라고 부르게 됐는지는 몰라도 정치인의 반려견다운 이름이란 망상(妄想)마저 떠오른다. 바로 영국의 옛 정당 '토리'(Tory)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꼽히는 영국 보수당(Conservative Party)의 뿌리다. 그래서 영국에선 선거철 숨은 보수 표심을 '샤이(shy) 토리'라고도 부른다. 현재 보수당의 대표는 2019년 7월부터 재임하고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이다.

참고로 토리는 도적 떼를 일컫던 말이었다. 훗날 가톨릭교회에 편중된 정책을 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제임스 2세의 즉위를 찬성했던 의원들을 반대파 '휘그당'(Whig)에서 경멸의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휘그 또한 반란자의 멸칭(蔑稱)이다.

개의 효용이 시대에 따라 바뀌었듯 보수(保守)의 목표는 변천해 왔다. 보수주의 정치 이념의 효시(嚆矢)로 평가받는 18세기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에게는 군주제, 귀족제, 종교제도를 지키는 것이었다. 21세기 사람들에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테지만.

물론 그가 기존 질서를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다. 저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1790년)에선 자신들에게 속하는 모든 걸 멸시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한데도 전면적 변화를 시도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한국 보수 정치권은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윤 당선인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언행을 보면 지난 5년 동안 권력욕만 키워온 게 아닌가 싶어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쉽게도 새 정부는 첫걸음부터 휘청대고 있다. 위기에 빠진 공동체에 대한 성찰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성을 통해 바람직한 전통을 새롭게 찾아내겠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청와대 만찬 테이블에도 가시 돋친 말들만 올려서는 안 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개념이 자명하지 않고, 긍정적으로도 쓰이지 않는 것은 순전히 보수 정치권의 책임이다. 그 안티테제인 '진보'가 허구적이며 위선적이란 의구심을 사고 있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지키려는 붕당(朋黨)의 시대는 이제 끝나길 기원한다.

일찍이 버크는 '독재와 잔인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남용된 권력의 몰락을 바라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정권 심판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극명하게 반반으로 나뉜 국론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제 그 이름에 걸맞은 정치 이념의 실천에 전념해야 한다. 더욱 낮은 자세로 진정한 보수다움을 보여줘야 대선에서 지지하지 않은 국민까지 끌어안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국민의힘은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이란 제목의 강령에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구절까지 적어놓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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