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17일쯤은 미얀마력(曆) 기준의 전통 설인 '띤잔'(Thingyan)으로, 나흘 전부터는 미얀마 최대의 물축제가 시작된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새해의 건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것이 전통이며 태국의 송끄란과 함께 세계적인 축제다.
2014년 이후 미얀마 양곤을 방문하여 글로벌 청년 인재(GYBM) 양성 사업, 김우중 사관학교 미얀마 과정의 연수 상황을 둘러보고 한국 기업도 찾아다니곤 했다. 위탁 연수 중인 양곤외국어대학은 여러 나라의 유학생, 연수생이 많이 붐빈다. 우리나라 연수생인 한국 청년들의 인기는 최고로, 캠퍼스 내에서 움직이면 많은 학생의 시선이 집중될 정도이다.
출장 중에 한 번씩 경험했던 물축제의 기억이 새롭다. 온통 물로 난리 나는 시내를 연수생 10여 명과 같이 덮개 없는 트럭을 타거나 걸으며 분위기를 만끽한다. 짜릿한 축제에 최고 인기의 젊은 연수생들과 같이 다니면서 즐기는 재미는 쏠쏠하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물 세례를 앞뒤에서, 하늘에서 맞아도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며 국적, 종족, 나이를 넘나든다. 물을 뿌리는 것은 배려와 축복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서로에게 지난해의 불행, 액운을 씻어주는 배려와 빈자리에 새해의 행운과 설렘의 축복을 채워주는 것이다.
불교의 보시 문화와 국민성도 영향을 받아 일 년 중 제일 물이 귀한 건기(乾期)에 가장 귀한 것을 뿌리고 맞는 데 거부감이 없으며 덕분에 무더위를 날리는 효과도 보게 된다. 띤잔이 지나면 몬순의 영향으로 바로 우기(雨期)에 접어든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다. 상대방에게 물을 뿌리는 것은 불쾌함을 표현하거나 무례한 행동으로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얀마에서는 소박한 것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을 가지게 되니 특히 이채로운 경험이 된다.
미얀마 군사쿠데타가 지난해 2월 1일에 있었으니 벌써 15개월이 넘어간다. 지난해 4월의 띤잔 축제는 쿠데타 탓으로 시민들이 거부해 아예 열리질 못했다. 올해 상황이 궁금해 현지에서 생활용품 유통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이제는 축제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며 운을 떼고 미얀마의 근황을 전한다. "코로나는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지난해 군사쿠데타 여파가 큽니다. 군사정부는 양곤이나 만달레이 시내 도로변에 축제장도 만들며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지만 참가자가 없습니다. 대개가 고향으로 귀향하거나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시골 외곽길로 가면 어린아이들의 축제 분위기로 느낄 수 있는 정도입니다."
"내수 소비경제는 연초부터 회복세에 들어가서 요식업종 등을 중심으로 창업하는 가게들도 많이 생기고 중산층 이상이 그나마 소비를 늘리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외국 기업 투자도 줄고 실업률도 높아 도시의 서민과 빈민층이 살기가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수출 회사는 중앙은행이 외화 소득을 자국의 짜트화로 강제로 환전하게 해 외화 부족이 심해질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달러화 환산 현지화 인건비가 낮아져 수출 주력인 봉제업종은 때아닌 호황이라 할 정도입니다. 부동산 시장도 거품이 많이 빠진 상황입니다."
"양곤, 만달레이 두 도시에서 시위는 없으며 반정부 활동은 무시해도 될 정도입니다. 일부 변경 지역에서 임시정부군과 군부와의 교전이 가끔씩 있는데 자주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겉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시민들도 개인사에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동남아로 진출했던 한국 기업에 은근히 기대가 컸던 미얀마이다. 코로나와 쿠데타로 많이 헝클어진 것이 못내 아쉽고 아직도 조심스럽다. 해마다 20명 정도의 한국 대학생을 데리고 가서 일자리를 챙기던 기억이 새롭다. 열악한 환경이기에 잘 버티면 오히려 미래 가능성이 크다는 역설적인 도전도 잠시 더 접어 두어야 할 것 같다.
물축제로 즐거워하던 미얀마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한편으론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신으로 접하고,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요즘같이 크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 1년 반 전에 작고한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의 '유토피아'론이 생각난다. 한국의 피터 드러커 전도사이기도 했던 그분의 통찰이다. "군주나 지도자들이 내거는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가 지상에는 그런 곳이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의식주 해결, 외세 침략 방어, 사회 내부의 평등이라는 3요소가 필수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들이 귀에 속삭이는 유토피아에 속으며 살고 있다."
오히려 물축제 현장에서 주고받는 시원한 물 한 바가지에 서로 배려하고 축복하는 유토피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