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전임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재선에 실패할 정도로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이후 모습이 아름다웠던 덕분이다. 인권운동, 세계 평화 유지 등에 헌신한 그는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내년 백수(白壽)를 맞는 카터는 올해 초엔 '민주주의를 염려한다'는 기고를 뉴욕타임스에 썼다. '의회 난입 사태' 1년을 앞두고서다. 모든 이는 헌법 원칙과 공정성, 예의와 법치 존중에 동의해야 하며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세력에 집단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논지였다.
그는 재임 중에도 명연설을 여럿 남겼다. 1979년 '자신감의 위기' 연설이 대표적이다. 카터는 당시 "미국인들이 방종(放縱)과 소비 숭배에 빠져들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전직 대통령임을 앞세워 이익을 취하고 싶진 않다는 이유로 연설·출판회조차 사양했던 그가 오늘 시작하는 우리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임대왕' '아빠 찬스' '사외이사 꿀알바' '이해 충돌' 등등 국민 자존심을 뭉개는 온갖 해괴한 의혹과 궁색한 변명 잔치에는 제 아무리 뛰어난 웅변가라 해도 시쳇말로 '쉴드'(보호) 엄두가 나지 않으리라. 당선 인사에서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은 편법·탈법에만 탁월한 개인기를 갖춘 인사들뿐이란 말인가!
명예는 내동댕이친 채 부와 권력만 탐하는 게 어디 국무위원 후보뿐이랴. 욕 먹는 것쯤은 이미 각오한 일이란 듯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해 위장 탈당이란 희대의 꼼수를 마다하지 않는 여당, '죄수의 딜레마'를 무기 삼아 양당 합의만 종용한 국회의장, 위기는 넘기고 보자는 심산으로 합의문에 선뜻 서명한 국민의힘…. 다들 진짜 머리 하나는 좋은 것 같다.
'검수완박' 파문은 이제 인사청문회와 지방선거 열기에 밀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가·붕·게'(가재·붕어·게)들이라고 마냥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걸핏하면 "국회가 우습냐"며 핏대 세우는 위정자(爲政者)들이 2년 뒤 총선에서 우스운 꼬락서니가 된다면 오롯이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업보 탓이다.
작금의 정치권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우리 정치권은 진정 국민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못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수준 이하 정치판에 넌더리가 난 독자들을 위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못 하는' 것은 아예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못하는' 것은 능력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노래를 못하는 가수는 없지만, 가수라도 몸 상태에 따라 노래를 못 하는 상황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것과 대조적으로 민주주의만큼은 선진국 대열에 이르지 못한 책임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구차한 핑계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얻거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위선자(僞善者)들이야말로 우리가 아직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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