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더 컨트렉터’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더 컨트랙터'(감독 타릭 살레)는 버림받은 계약직 용병의 복수를 그린 액션 스릴러다. 액션을 기대하고 보기엔 다소 정적이고, 스릴러로 보기에 긴장감이 부족한, 그러나 나름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영화다.

특수부대 중사 제임스 하퍼(크리스 파인)는 다친 무릎 때문에 강제전역을 당한다. 재활치료 중 금지된 약물을 사용해 연금과 의료보험도 없이 쫓겨난 것이다. 그래서 빚 독촉에 가족의 생계까지 막막한 처지로 나앉게 된다. 어느 날 옛 동료인 마이크(벤 포스터)가 용병 조직을 소개한다. 국가 안보를 위한 합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민간 군사회사이다. 조직의 보스 러스티(키피 서덜랜드)는 후한 월급과 선금까지 약속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계약을 하고 첫 번째 임무를 맡는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독일의 연구자를 암살하고 자료를 탈취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임무를 완수한 후 철수하는 과정에서 현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동료들이 사살되고 마이크와 함께 가까스로 탈출한다.

'더 컨트랙터'는 현재 진행형인 팬데믹 상황을 스릴러 속에 끼워놓았다. 세계인의 목숨을 담보로 약을 팔기 위해 혈안인 제약회사의 음모론은 익숙한 소재다. 약은 생산원가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이다. 외형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약회사는 사람들이 아파야 돈을 버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하퍼가 맡은 첫 임무는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해한 연구자가 사실은 세계인의 목숨을 구하는 백신 연구자였던 것이다. 자신 또한 데이터 확보 후 비밀유지를 위해 살해될 처지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장기판의 말인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에게는 절망감이 밀려든다. 가장 그를 괴롭히는 것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거기에 무릎의 통증은 더욱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더 컨트랙터'는 총격장면 보다 주인공의 사적 서사에 더 공을 들인다. 하퍼의 아버지 또한 레인저 출신으로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아픔과 함께 자신 또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운명에 놓였다. 이것이 여느 액션 스릴러와 다른 결이다. 그러다보니 화끈한 액션 보다 하퍼의 고독과 연민, 절망감, 분노에 클로즈업된다.

언뜻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로스트 인 더스트'(2016)의 그림자도 어린다. 이 영화는 빚더미 속, 벼랑 끝에 내몰린 형제가 은행 강도로 희망을 찾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그렸다. 가혹한 자본주의에 매몰된 가난한 자의 사투가 긴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형제로 나온 크리스 파인과 벤 포스터가 '더 컨트랙터'에서는 동료로 출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그러나 '로스트 인 더스트'가 주는 사회성 짙은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형화된 스릴러의 틀에 갇혀 버린 것이 '더 컨트랙터'의 한계다. 제약회사의 음모론도 그렇지만 헌신한 조국에 배신당하고, 용병으로 또다시 버림받는 주인공은 숱한 영화에서 써 먹은 클리셰다. 가족으로 돌아가고픈 바람 또한 모든 장르의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상투적인 설정이다.

그래서 하퍼의 처절한 귀향의 여정은 개인화에 머물며 오열하는 하퍼의 마지막 울림도 관객의 가슴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마무리의 임팩트가 급조된 듯 허술해 아쉬움을 더한다.

'더 컨트랙터'는 배우 크리스 파인의 1인극과 같은 영화다. 영화는 시종 아픈 무릎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크리스 파인의 맑고 푸른 눈은 '로스트 인 더스트'처럼 설움 많은 선한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그는 '더 컨트랙터'의 대본을 받고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거기에 제작자로 가세해 감독을 찾고, 대역 없이 직접 액션을 소화했다니 이 영화에 거는 그의 기대를 가늠케 한다. 촬영 전 수개월간 실제 특수 부대 출신 트레이너와 함께 훈련했는데, 얼마나 쉬지 않고 매달렸는지 감독까지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총격신과 액션이 짧지만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더 컨트랙터'는 상투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그러나 스토리가 상투적이면 그 어떤 캐릭터의 진정성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28일 개봉. 103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 '더 컨트렉터'의 한 장면.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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