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사'라는 영화가 있다. 20년 전 개봉한 영화다. 여기서 특사(特赦)는 특사(特使)가 아닌 '특별사면'의 줄임말이다.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려 탈옥했는데 알고 보니 특사였다는 줄거리는 기억에서 온데간데없다.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다"고 열창하는 여배우의 음색만 귀에 선명하다. 20년쯤 지나면 그럴 수밖에.
사면과 관련해 작가적 상상력만 기억에 남는 소설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조인계획'(鳥人計画)에는 스키점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르웨이에는 죄인에게 스키를 신기고 엄청난 급경사 위에서 밀어 버리는 벌이 있었는데 그 순간의 공포를 주려는 게 이 벌의 목적이었다. 독특한 특전이 있었다.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착지하면 사면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놀이로 진화한 게 스키점프라는 발상이다. 혹시나 해서 대한스키협회에 물으니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지만 사면과 곧장 연결이 안 되는 시기였다. 통상 사면은 신년, 명절, 연말, 그리고 삼일절(3월), 광복절(8월), 성탄절(12월) 등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경사스러운 날에 맞게끔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면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니 사면 논의가 있을 때마다 운전면허 정지·취소자들의 마음도 설렌다. 구제받는 숫자가 백만 명 단위다.
조선시대에도 경사에 응당한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왕이 즉위하거나, 원자(元子)가 탄생하거나, 심지어 왕이나 왕비가 전염병에서 회복됐을 때 으레 대사령이 뒤따랐다.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 이융도 태어났을 때만큼은 세상의 빛이었다. 성종의 맏아들인 그의 탄생으로 대사령은 물론, 특수 세금의 면제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조건으로 꼽았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인물이 있을 수 있을까.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들의 면면에서 교집합을 끌어내는 것도 난제다. 이재용, 신동빈 등 경제인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 정경심 교수,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아우른다. 석가탄신일 특사에 오를 이들이 궁금해진다.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으려 애쓴 문 대통령의 선한 의지와 민의(民意)의 동류항이 부디 여럿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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