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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안의 클래식 친해지기] <15>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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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자네에게 클라라를 줄 수 없네, 어림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아예 꿈도 꾸지 말게."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할 것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요청했지만 돌아온 말은 싸늘했다. 클라라의 나이가 고작 14살밖에 되지 않았고 슈만은 23살의 무명 음악학도에 불과했다.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은 라이프치히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음악에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겨우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 20살 때부터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작곡은 도른에게 배우고, 피아노는 비크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스승 비크의 집에는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미모의 딸 클라라가 있었다. 슈만은 9살 연하의 그녀에게 마음이 쏠렸고 클라라도 슈만에게 호감을 보였다. 서로간의 사랑이 무르익었을 무렵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할 것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요청했다.

비크는 어미 없이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보잘 것 없는 슈만에게 줄 리 만무했다. 비크는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로 고소했고, 슈만도 비크를 맞고소했다. 스승과 제자 간에 법정싸움이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되었다.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지루한 싸움 끝에 법정은 그들에게 결혼을 허락했다. 클라라가 보호자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나이는 21살, 슈만은 30살이었다.

결혼 후 그들은 서로에게 극진히 대했다. 아내 클라라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슈만은 작곡가로서 창작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전까지 피아노곡을 작곡해 온 슈만은 '시인의 사랑', '리더 크라이스', '여자의 생애'를 포함한 140여 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이때의 가곡 작품은 클라라를 얻은 기쁨과 사랑을 선율에 실었는데 결혼한 그해는 슈만에게 '가곡의 해'가 되었다.

슈만의 나이가 40세가 될 무렵 뒤셀도르프 시는 슈만을 지휘자로 초빙했다. 그는 3년간 뒤셀도르프시립관현악단 지휘자로 재직했다. 그 무렵 슈만은 무명이었던 청년 브람스를 만났는데,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보고 '음악신보'에 평론을 실어 브람스의 재능을 널리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슈만에게는 그 전부터 징후를 보였던 정신병이 갈수록 심해져갔다. 그는 극심한 환상과 환청에 시달렸고 갑자기 방을 뛰쳐나가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다행히 사람들에게 발견돼 구조되었으나 근교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점차 병이 심해져 2년 후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슈만은 그의 풍부한 문학적 재능과 음악적 감성을 결합해 구현하려고 했던 독일 낭만파의 전형을 보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가곡은 물론, 기악곡에서도 시적이면서 철학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슈만은 비평가와 지휘자, 그리고 작곡가로서 다방면의 재능을 보였다. 사실 그가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면에 클라라가 존재했고,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슈만의 사후에도 클라라는 피아니스트로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하고 알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또 브람스는 존경하는 슈만과 그의 미망인 클라라를 끝까지 보살폈다. 이들의 숭고한 우정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 오월에 '시인의 사랑'을 음미하면서 가객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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