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그때 그 靑과 尹 당선인의 용산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1981년부터 2016년까지 35년 동안 반핵 천막 시위를 이어간 콘셉시온 피치오토 여사.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용산에서도 반대파까지 끌어안는 탈(脫)권위와 포용의 정치가 이뤄질 때 청와대 이전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사진은 1990년 6월 시위 중인 피치오토 여사 모습. 손에 든 배구공에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1981년부터 2016년까지 35년 동안 반핵 천막 시위를 이어간 콘셉시온 피치오토 여사.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는 용산에서도 반대파까지 끌어안는 탈(脫)권위와 포용의 정치가 이뤄질 때 청와대 이전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사진은 1990년 6월 시위 중인 피치오토 여사 모습. 손에 든 배구공에 '평화'라는 한글이 보인다. 송신용 기자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1주일 뒤면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오는데 인기 1순위는 어디가 될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장담대로 최고의 정원이라는 녹지원과 상춘재가 될까. 청와대 출입기자를 지낸 입장에선 인수문(仁壽門)을 '강추'한다. 북악산 아래 구중궁궐로 버티며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한 곳, 빛나는 성취의 역사를 쌓아 올린 무대이자 불통·쇼통의 대통령이 민심과 멀어져 쫓겨나듯 물러난 비극의 공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與民館·비서동)으로 첫 출근하던 날 현장에 있었다. 누군가 "5년 만에 민간인은 처음이네"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 실세 이외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는 소문이 돌던 시절이다. 이를 겨냥한 언론 플레이로 들렸다. 배웅을 마친 김정숙 여사가 급히 되돌아와 문 대통령의 옷매무시를 고쳐줬다. 김 여사는 "바짓단이 너무 짧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요즘 이게 유행이래"라고 맞받았다. 불통이나 쇼통이나 도긴개긴이다.

청와대 이전은 역대 대통령의 화두였다. 분권에 천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를 통째 지방으로 옮기려 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발목이 잡힌 건 알려진 대로다. 문 대통령은 광화문 이전을 공약했다. 주영훈 경호처장 인선을 발표하면서 "(제) 공약인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잘 뒷받침해 줄 분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순진하게 믿었던 약속은 허언이 됐고, 문 대통령은 비서동에서 집무하는 선에서 민심을 달래야 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이전 반대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하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고 한 건 어불성설이다. "조선총독부 관저, 경무대에서 이어진 청와대는 지난 우리 역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상징"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환기하면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다. 급기야 여권에선 3일 "(윤석열) 정권이 지나고,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청와대로 다시 갈 것"(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이라는 압박이 나왔다.

윤 당선인으로선 구(舊) 권력의 훼방과 집무실 이전 속도전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연착륙이 중요하다. 이전을 전후해 북의 도발이 불 보듯 하는 상황에서 안보 불안과 시민 불편을 해소하며 소통과 통합의 공간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어도 몸살을 앓는 법인데 집무실 이전에 따른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오롯이 당선인의 몫이다.

독일 전투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1943년 10월 28일, 의회 재건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영국 하원위원회에서 나온 윈스턴 처칠 총리 발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그는 "우리는 건축물을 짓지만, 그 이후로 그것은 우리를 짓는다"라고 했다. 처칠은 구체적으로 긴 의자에서 서로 마주 앉는 직사각형 형태의 의회 구조와 고정석을 만들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이 탁월한 선택은 오늘날 치열한 토론으로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영국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윤 당선인은 백악관을 모델로 삼겠다고 하지만, 관건은 이행력이다. 닳아빠진 다람쥐가 주인 행세를 하는 백악관 앞은 시민과 관광객, 피켓(손 팻말)이 조화롭게 물결치는 곳이다. 이곳에 반핵 시위가 콘셉시온 피치오토 여사가 있었다. 3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평화를 외쳐 '백악관에는 주인이 2명 있다'라는 말을 낳은 주인공이다. 반대 목소리마저 끌어안아 용산의 일부로 기능하도록 할 때 소통과 통합이 이뤄지고, 마침내 청와대 이전의 참뜻이 완성될 것이다. 나아가 '용산 르네상스'를 통해 경제 분야로 긍정적 파급효과를 이어간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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