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시시각각] <101> 아름다운 상생, 예천 석송령(石松靈)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1925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창 씨가 소나무 앞으로 땅을 기증한 뜻을 받들어 마을 사람들은 석송령보존회(회장 김규탁)를 꾸려 지금껏 보살펴 오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1925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창 씨가 소나무 앞으로 땅을 기증한 뜻을 받들어 마을 사람들은 석송령보존회(회장 김규탁)를 꾸려 지금껏 보살펴 오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옆으로 가지가 길게 뻗어 그늘은 1071㎡(약 324평)에 이른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옆으로 가지가 길게 뻗어 그늘은 1071㎡(약 324평)에 이른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석송령. 가슴 높이의 소나무 둘레는 4.2m에 이른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석송령. 가슴 높이의 소나무 둘레는 4.2m에 이른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석송령보존회 김규탁 회장(왼쪽)과 권영덕 이장이 석송령에 전해오는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천향리 5개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14일 자정, 동신목인 이 소나무에 동제를 지내며 마을 화합을 다진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석송령보존회 김규탁 회장(왼쪽)과 권영덕 이장이 석송령에 전해오는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천향리 5개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14일 자정, 동신목인 이 소나무에 동제를 지내며 마을 화합을 다진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천향리 석평 마을 입구에 자리한 석송령. 왼쪽 뒤편 창고 건물을 비롯해 소나무가 자리한 대지 뒤로 들어선 건물터가 모두 석송령 앞으로 등기된 땅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천향리 석평 마을 입구에 자리한 석송령. 왼쪽 뒤편 창고 건물을 비롯해 소나무가 자리한 대지 뒤로 들어선 건물터가 모두 석송령 앞으로 등기된 땅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석송령 가지가 낙뢰를 맞아 몇차례 부러지자 피뢰침을 세웠다. 왼쪽 작은 나무는 석송령 2세 후계목으로 1996년 종자를 받아 키운 뒤 두 그루를 2002년 이곳에 옮겨 심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석송령 가지가 낙뢰를 맞아 몇차례 부러지자 피뢰침을 세웠다. 왼쪽 작은 나무는 석송령 2세 후계목으로 1996년 종자를 받아 키운 뒤 두 그루를 2002년 이곳에 옮겨 심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2021년 석송령이 낸 토지분 재산세 11만 780원 납부 영수증. 석송령보존회 제공.
2021년 석송령이 낸 토지분 재산세 11만 780원 납부 영수증. 석송령보존회 제공.
지금도 매년 10~15cm씩 자라는 석송령 가지가 울타리를 넘어 도로까지 뻗어나오자 하천 쪽으로 도로 이설 작업이 한창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금도 매년 10~15cm씩 자라는 석송령 가지가 울타리를 넘어 도로까지 뻗어나오자 하천 쪽으로 도로 이설 작업이 한창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 우뚝 선 석송령을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 석송령(石松靈).

마을을 지키듯 동네 앞에 우뚝 서 두 팔을 쫙 벌린 자태가

여간 범상치 않습니다. 수령이 600살도 훌쩍 넘어

석평(石坪)마을 최고령에, 사람처럼 떡하니 이름도 재산도 갖고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준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600여 년 전, 큰 홍수 때 마을 앞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거둬 이곳에 심었다는 소나무.

일제강점기 때, 이 나무로 배를 만들겠다며 톱을 싣고

개울을 건너던 벌목공의 자전거가 갑자기 두 동강 난 뒤부터

영험한 나무, 동신목으로 여태 마을을 지키고 섰습니다.

1925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창 씨는 임종을 앞두고

행방불명 된 외아들 이수목 씨를 도무지 찾을 길이 없자

전 재산 6천611㎡(2천평)를 소나무에 주고 떠났습니다.

그의 뜻을 받들어 주민들은 석평 마을의 신령스런 소나무,

석송령이라 이름 짓고 2년 뒤엔 실제 등기도 마쳤습니다.

1951년 1월 19일, 이 일대에 머물고 있던 인민군에 미군

전투기가 폭격하면서 25가구가 불타고 26명이 숨졌습니다.

폭탄은 소나무가 자리한 석평 마을을 용케도 비켜갔습니다.

당시 입대한 마을 청년 11명 모두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다니

주민들은 그날의 기적을 수호신, 석송령 덕이라 여깁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이수목씨 가족이 고향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땅을 되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한 일에 왈가왈부 마라"

아들 이수목 씨는 일언지하에 분란을 잠재웠습니다.

석송령 재산은 주민들로 구성된 석송령보존회가 관리합니다.

현재 이 소나무가 소유한 땅은 1만2천116㎡(3천665평).

보존회는 그의 땅을 배 가까이 불렸습니다. 이 대지 위엔

마을회관, 경로당, 보건진료소에 민가도 2채나 들어섰습니다.

몇해 전엔 석송령 명의로 큼직한 창고도 하나 샀습니다.

임대료 등을 합치면 그의 연봉은 1천 2백만원이 넘습니다.

석송령이 지난해 낸 토지분 재산세는 11만 780원.

천향리 아이들에겐 1986년부터 장학금도 주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로부터 그동안 장학(입학)금을 받은 학생은 47명.

지금은 5개 부락 55 가구에 초등생이 3명 중학생이 1명,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0명. 장학금 받을 아이가 없습니다.

보존회는 뒷산에 잠든 이수창씨 묘소에 벌초도 하고 시제도

지냅니다. 후손들의 요청에 따라 대구현대공원묘지에 잠든

아들 이수목씨 묘소도 이곳에 모셔 공덕비도 세울 계획입니다.

땅부자에 세금은 물론 장학사업도 벌이는 큰 어른, 석송령.

이 시대 보기 드문, 천향 사람들이 일구는 상생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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