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바이든 박사는 지난 5월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도시에서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을 만난 뒤 곧바로 남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만난 난민들이 겪은 전쟁의 공포와 잔인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직접 방문하지 못한 대통령에게 눈과 귀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
그의 방문은 극적이었다. 미 대통령 부인의 전장(戰場) 위문은 2008년 로라 부시 여사가 아프가니스탄을 찾은 게 마지막이었다. 물론 바이든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힘들어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해야 한다"며 퍼스트 레이디의 남모를 고충을 토로한 바 있지만 '감성 특사'(emotional emissary)로서 효과는 컸다.
젤렌스카 여사 역시 우크라이나의 '비밀 병기'로 평가받는다. 지난 2월 개전 이후 이날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해외 도피 대신 고국에 남아 항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8일 영국 매체와 인터뷰에선 "러시아의 제1표적인 남편이 가족과 대통령으로서 책임 사이에 선택해야 하는 걸 원치 않았다"며 강단(剛斷)을 드러내기도 했다.
퍼스트 레이디는 이처럼 최고 지도자의 '비교 불가' 측근이다. 전쟁터에 군인을 파병하고, 산불 현장에 재난지역을 선포할 권한은 없지만 행동 하나하나는 상징성이 적지 않다. '대통령의 동반자: 20세기의 퍼스트 레이디' 저자인 마이라 구틴 교수는 그래서 "때때로 영부인은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갈 수 없는 자리에 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 늘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건 아니다. 대중은 때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영부인에 환호하지만 때론 의례적 내조 역할에 충실한 퍼스트 레이디를 원한다. 월급은커녕 헌법에 어떠한 권리나 의무도 규정돼 있지 않는 대통령 부인은 그만큼 절묘한 정무적 감각이 필요한 자리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집권 초기에 이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부인은 없었던 것 같다.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새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50%를 밑돈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딱히 꼬투리 잡을 만한 일은 없었다. 대선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김 여사 지인이 대통령실에 근무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직 영부인들, 여당 중진 의원 부인들을 만난 게 흉일 순 없다. 결국 김 여사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김 여사를 두고 말들이 나오는 배경에는 새 정부의 기세를 초장에 꺾어 놓으려는 야당의 속셈이 깔려 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이를 정치 공세로 깎아내리며 무시해선 안 된다. 아무리 선의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국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영부인은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고, 정치권은 제2부속실 부활을 검토해야 한다.
차라리 이참에 전시기획사를 오랫동안 운영한 김 여사의 '본캐'(본래의 캐릭터)를 국격 향상에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건 어떨까? 운영의 묘만 살릴 수 있다면 '부캐' 영부인으로서 역할보다 훨씬 잘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스페인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프라도 미술관을 둘러보거나 산 미구엘 시장에서 장을 보며 국민을 위한 영감을 떠올릴 수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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