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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언젠가 봄날이 돌아오고 백악산의 새벽이 다시 밝아 오리라

미술사 연구자

안중식(1861-1919),
안중식(1861-1919), '백악춘효(白岳春曉)', 1915년(54세) 여름, 비단에 채색, 197.5×63.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악산(북악산)과 경복궁을 그린 '백악춘효'는 안중식의 대표작 중 하나다. 1396년(태조 5년)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주산(主山)으로 삼은 백악산이 화면 한가운데 솟아있고 구름 띠로 감싸인 산 앞으로 무성한 나무와 궁궐 전각의 기와지붕들이 있다. 백악산은 위풍당당하고 조선왕조 법궁(法宮) 경복궁은 광화문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근엄한 위용이다. 궁문은 닫혔고 사람 하나 없는데 월대 앞으로 멀리 해태상이 좌우에서 호위한다.

'백악춘효'가 산뜻한 예서로 씌어있고 '을묘(乙卯) 하일(夏日) 심전(心田) 사(寫)'로 낙관해 1915년 여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백악의 봄 새벽'으로 제목을 써놓고 여름에 그렸다고 하니 계절이 맞지 않다. 이 그림 속 백악산과 경복궁은 과거형이자 미래형이지 당시의 현재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1915년 경복궁 모습은 이 그림과 달랐다. 봄부터 여름까지 궁 안팎이 온통 공사판이었고 가을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조선총독부가 '시정5년 기념 조선 물산 공진회'를 9월부터 두 달여 동안 대대적으로 열면서 경복궁을 행사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공진회는 강제병탄 후의 치적을 과시하려는 대형 이벤트였다. '매일신보' 3월 12일자는 "광화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의 이편저편에 재목이 산같이 쌓여있고 대패소리가 요란하고 본사 편집국 누상(樓上)에 앉아 바라보면 북창의 유리를 거쳐 경회루와 근정전 집 위에 개미 같은 인부가 종일 왕래하며 수리를 하는 모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안중식이 이 그림을 그린 여름 무렵 광화문 주변은 각종 공사로 어수선했다. 궁궐의 전각들이 파괴되고 훼손됐으며 곳곳에 서양식 건축물과 행사용 가건물이 들어서고 광고탑이 설치되며 경복궁은 공진회장이 돼가고 있었다.

백악춘효는 이런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옛 왕가의 의뢰를 받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그림의 제목은 '백악산의 봄 새벽 풍경'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국망의 암흑을 지나 '언젠가 봄날이 돌아오고 새벽이 다시 밝아 오리라'는 기원이다.

안중식은 고전산수화의 구법과 사생적 리얼리즘이라는 신법이 혼종된 실경산수화로 '백악춘효'를 그렸다. '백악춘효'는 경복궁과 백악산, 궁궐과 해태상 사이를 관례적인 산수적 공간표현인 운연(雲煙)으로 구분지었지만 광화문 앞 월대에는 일점투시도법이 적용됐고, 부감시의 원근법과 함께 대상을 파악하는 시점이 일관되며, 현실감 있는 묘사 방식 등 새로운 표현의식과 현장성이 드러나 있는 안중식의 역작 역사화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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