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싸늘한 시선과 수군거림에 주눅드는 안내견…20년동안 바뀐 게 없다

지난 2003년 대구에서 최초로 안내견 입양한 허경호 씨 동행취재
20년 흘렀지만 여전한 차별과 배제…식당·택시 안내견 출입거부
대구에서 활동하는 안내견은 단 3마리, 그릇된 인식 활동 위축시켜

시각장애인 허경호(41) 씨와 안내견 여울이. 배주현 기자
시각장애인 허경호(41) 씨와 안내견 여울이. 배주현 기자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은 소중한 눈이자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다. 안내견은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어디든 출입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거리로 나선 안내견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수군거림에 주눅들기 일쑤다. 여전히 많은 식당과 대중교통은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고, 지자체의 캠페인은 효과가 미미하다.

우리 사회에서 안내견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2003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안내견을 입양한 허경호 씨와 동행하며 반응을 살펴봤다.

◆세 번째 안내견 '여울이'와의 동행

다섯살 때 시력을 잃은 허경호(41) 씨가 안내견 '하놀이'를 처음 만난 건 20년 전이었다. 사범대생이었던 허 씨가 교생 실습을 나갈 무렵, 그의 곁으로 하놀이가 왔다.

하놀이와 함께 처음 내디뎠던 사회는 차갑기만 했다. 식당 주인은 "밥 먹는데 왜 개를 데리고 오느냐"며 내쫓았고, 하놀이와 시내버스에 오르면 버스기사가"개는 못 탄다"고 큰소리를 질렀다.

허 씨는 9년 전 하놀이를 떠나보내고 두 번째 안내견인 '해냄이'를 거쳐 지난 1월 세 번째 안내견 '여울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요즘이나 안내견에 대한 인식은 별반 달라진게 없다.

허 씨는 "안내견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맞서 싸우지만 여전히 안내견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며 "안내견이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보니 입양했다 파양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매일신문 취재진과 서양음식점을 찾은 허 씨. 허 씨가 식사를 할 동안 안내견 여울이가 곁에 얌전히 앉아있다. 배주현 기자
매일신문 취재진과 서양음식점을 찾은 허 씨. 허 씨가 식사를 할 동안 안내견 여울이가 곁에 얌전히 앉아있다. 배주현 기자

◆안내견과 함께 찾은 식당…사람들 시선에 '움찔'

허 씨와 함께 안내견 여울이를 데리고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혹시나 안내견을 거부할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제지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서자 여울이에게 손님들의 시선이 일시에 몰렸다. 허 씨가 여울이와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일부 손님들은 놀란 듯 소리쳤다.

기자가 식당 출입이 가능한 안내견임을 설명했지만 냉담한 눈빛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도 옆 자리 손님들의 차가운 시선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허 씨는 "1년 전에 한 번 방문한 곳이지만 출입 거부를 당할까 사실 많이 떨렸다. 같은 가게라도 직원마다 반응이 다르다. 주변 사람들이 제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안내견의 출입을 금지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날은 다행히 출입 거부는 없었지만 허 씨는 "안내견과 함께한 지난 20년동안 늘 '거절'과 함께 살아왔다"고 했다.

식당 출입과 시내버스, 택시 탑승 거부는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차별이었다. 교사인 허 씨는 학생 10여명을 데리고 식당을 찾았다가 주인이 화를 내는 바람에 쫓겨났던 경험도 있다. 장애인 콜택시에선 "다음부턴 호출하기 전에 안내견에 대해 미리 말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허 씨는 "직장에서도 차별을 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10여년 전 기간제 교사로 처음 부임할 당시 학교 측은 "안내견은 교무실에 못 들어온다"고 거부했고, 안내견 하놀이를 학교 창고에 가뒀다. 당시 일자리를 잃을까 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는 허 씨는 수업 시간 내내 노심초사하다가 쉬는 시간마다 창고로 찾아갔다.

지난해 죽은 두 번째 안내견 해냄이는 점심시간에 혼자 있다가 쓰레기통에 있던 이물질을 먹고 세상을 떠났다. 허 씨는 "안내견을 홀로 둔 내 탓이라는 생각에 어느 누구에게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같이 급식소에만 갈 수 있었어도, 혼자 두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후회한다"고 말했다.

허 씨와 안내견 여울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여울이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 통행 여부를 확인한 뒤 허 씨를 안내했다. 배주현 기자
허 씨와 안내견 여울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여울이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 통행 여부를 확인한 뒤 허 씨를 안내했다. 배주현 기자

◆대구에 사는 '안내견'은 세 마리가 전부

허 씨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서 시각장애인과 함께 다니는 안내견은 단 3마리에 불과하다. 지자체나 대구시각장애인협회가 안내견 현황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아 이마저도 추정일 뿐이다.

안내견은 전국적으로도 숫자가 적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전국에서 활동하는 안내견 수는 69마리에 불과하다. 안내견이 되기까지 훈련이 까다로운 탓도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가 안내견의 사회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허 씨는 좀처럼 외식이나 외출을 하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배달 음식을 먹거나 주말에 가끔 반려견 카페를 향하는 게 전부다. 안내견 역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풀이 죽는다. 허 씨는 "안내견 여울이도 식당 출입을 거부당하는 날이면 의기소침해진다"고 했다.

여울이를 향한 시민들의 그릇된 인식도 그를 지치게한다. 도시철도를 타는 날이면 여울이를 향해 "안내견 참 불쌍하다", "슬퍼 보인다"는 등의 수군거림을 들어야하고, 허 씨의 동의 없이 함부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허 씨는 "안내견을 만지거나 말을 걸면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에 동행하는 시각장애인이 다치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월 대구 서구청이 지역 내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에 배포한 장애인 보조견 환영스티커. 서구청 제공
지난 2월 대구 서구청이 지역 내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에 배포한 장애인 보조견 환영스티커. 서구청 제공

◆안내견 지원 조례 실효성은 '글쎄'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장애인 보조견의 훈련과 보급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구에서는 올해 서구와 달성군이 먼저 지원 조례를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서구청은 지난 2월 장애인 보조견 환영스티커를 제작해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에 배포했다. 그러나 식당 등 민간에서 참여한 사례는 아직 없다.

기자가 서구를 비롯해 대구의 음식점 10여 곳에 안내견 출입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가능하다는 곳은 단 2곳에 불과했다.

대체로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가능하다", "구석 자리로 안내해주겠다"는 대답이 주를 이뤘다.

이와 관련, 서구청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스티커 부착 홍보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내견에 대한 캠페인도 좋지만 장애인차별금지에 대한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안내견과의 동행은 배려가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라며 "직장 내 장애인 차별 금지 교육이나 사회 인식 개선 강화 방안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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