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수성구 용학도서관에서 '임진형의 음악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의 음악과 그에 연관된 문학과 철학, 미술학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야기하는 수업이어서 청중들이 재미있어 하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주엔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를 주제로 두 인물의 콜라보 작품을 듣고,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한 장면도 감상했다. 이렇게 3분기가 끝나고 10월 13일부터는 마지막 4분기 강의가 시작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한겨울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 수강생은 처음엔 30여 명 정도였지만, 이젠 두 배가 훨씬 넘는 인원이 참가하고 있다. 멀리 동구와 북구에서 오고, 직간접적으로 개인적인 소감과 수업의 기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때의 보람은 말할 수 없다. 그 중 한 참여자는 '임선생의 강의가 너무 좋아!'라고 칭찬도 하며, 가끔씩 도움이 될까 싶어 음악 관련 기사까지 보내주신다. 언제부터인가 그 분이 수업 시간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안부차 전화를 드렸고, 불참의 사정은 이러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임선생의 명강의를 못 듣고 있습니다. 나는 현재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병원에 있다가 이제 집으로 왔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서 외출이 어렵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숙제, 그것을 푼 사람은 아직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삶은 물 같은 것이고 죽음은 하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존경했던 한국의 지성 이어령씨나 소설가 박완서같은 분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분들의 지성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만분의 일도 따르지 못하는 입장이지만 정신만은 배우고 싶습니다…. 어느 햇살 고운 가을날 임선생의 강의를 들을 날을 기대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왜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할까.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방 세계'(four fold)를 통해 존재의 성스러운 장소로서 현존재의 공간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늘과 대지, 신적인 것들(immortal)과 죽을 자들(mortal)로서 넷이 하나로 포개져 고유해지면서 서로를 비추는 차원이 된다. 예를 들면, 정화수에는 단순한 물 한 그릇이 아니라 천지신명의 지극함과 기도하는 이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또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네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거나 삶의 끝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삶의 내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누구나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의 삶 속에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매순간 삶과 죽음의 그 어떤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어떻게 온전히 살아낼 것인가. 따스한 가을 어느 날, 청중석에 다시 앉아 있을 그 분을 생각하며 나는 마음의 정화수 한 그릇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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