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6월 '겪어 보지 못한 위기가 온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금리 인상의 거센 파고와 환율 폭등 사태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과 중국의 빗장 풀기가 이어지면 글로벌 경제위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몇 달 사이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고, 위기설은 차츰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처지가 극도로 불안하다. 국내 기업 10곳 중 6곳이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초순 국내 제조기업 307개사를 대상으로 '최근 금리 인상의 영향과 기업의 대응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자금 사정 악화, 설비투자 지연 및 축소, 소비 위축에 따른 영업 부진 등이 이유다. 현 기준금리(2.50%)에도 시중 대출금리는 5∼6%를 넘어서는데, 기준금리가 3.00%를 넘어서면 시중 대출금리는 7∼8% 이상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고금리 대책이 있다는 기업은 20.2%에 그쳤고, 중소기업 10곳 중 1곳만이 '대응책 마련 중'이라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8∼18일 매출 1천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은 더 암울하다. 국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p)만 올라도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응답 기업들의 기준금리 임계치,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수준은 평균 2.6%로 조사됐다. 임계치가 2.25% 이하인 기업도 무려 37.0%에 달했다. 기업 10곳 중 3곳 이상이 현 기준금리(2.5%) 상황에서도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위기는 겨우 시작일 뿐이다.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갈수록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로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상승까지 보태져 옴짝달싹 못 할 지경이다. '부실 도미노' 우려까지 나온다.

한계기업, 즉 3년 연속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다시 늘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계기업 수는 14.9%, 차입금 비중은 14.8%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수준(14.8%, 15.0%)까지 줄었다. 그런데 올해 이들 수치는 18.6%, 19.5%까지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한계기업 부실이 현재화되면 자본이 취약한 비은행권 중심으로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로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제10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내외 경제와 금융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가고 있다"고 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글로벌 고강도 통화 긴축,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경기·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상승했다"고 했으며,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업 불황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대외적 요인에 따른 위기라고 해도 해결책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럴듯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들의 투자 약속은 물 건너갔다. 미국발 악재에 손가락만 빨고 있을 뿐 외교적 해결 노력이 가시적 성과로 돌아왔다는 뉴스도 없다. 흉내 내기에 그칠지라도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경제위기 해결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소식을 기대했건만 기미조차 없다. 북한은 미사일 쏴 대고, 정치권은 '친일·친북' 프레임 싸움에 골몰 중이다. 그러는 사이 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