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였었나 아님 일이 힘들었었나/ 유난히도 피곤하던 그날 그 밤/ 억지로 감은 눈꺼풀 위로 자꾸만 니가 내려앉아 어쩌지/ 널 봐야겠어 아님 잠을 잘 수 없는 걸/ 그렇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어/ 주머니 속엔 천 원 몇 장과 동전 몇 개뿐인 날 원망만 하다/ 괜찮아 시간도 돈도 아직까지 충분해 지금 나 너에게로 달려갈게/ 번쩍이는 외제차는 없지만 더 반짝이는 내 마음을 들고/ 106번 버스를 타고 열 정거장/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 일곱 정거장/ 이십분 더 걸어가면 보이는 익숙한 너의 골목….'
15일 오후 대구 두산동 문학공간 '시인보호구역'에서 4인조 어쿠스틱밴드 가을정원의 '1200원'이란 곡이 흘러나왔다. 시인보호구역이 마련한 시 콘서트 '노래와 시, 대구를 읽다'가 열린 날이었다. 이날 공연은 대구 명소를 노래한 시와 음악으로 대구를 여행한다는 콘셉트. 정훈교 시인이 금호강을 모티브로 쓴 시 '저문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읽다' 낭송이 끝나자, 가을정원은 대구지하철을 소재로 쓴 '1200원'을 노래했다.
◆벌써 10년
가을정원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대구의 중견 밴드다. 리더 최주민(39‧기타)이 2012년 결성했다. 지금의 멤버 최준형(36‧베이스), 김가영(29‧보컬), 황가빈(23‧바이올린)은 각각 2016년과 2020년, 2019년 합류했다.
가을정원이 탄생하기 전 최주민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의 음악을 동경했다. 루시드폴은 '노래하는 시인'이란 별명을 지닐 정도로 그의 음악은 서정적인 가사와 감성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특징이다. 가을정원이란 밴드명도 루시드폴을 동경했던 최주민의 마음이 낳은 이름이다.
"밴드 이름을 고민하다 루시드폴 음악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단어를 전부 적어 놓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죠. 결국 '가을'과 '정원'이란 두 단어가 남았고 이것을 조합한 게 밴드 이름이 됐습니다."(최주민)
멤버 중 막내 황가빈을 제외하면 모두 교사란 점이 독특하다. 최주민은 안동에 살며 봉화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최준형은 구미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김가영은 대구에서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한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황가빈 또한 음악 교사를 꿈꾼다.
그렇다고 '직장인밴드'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을 듯하다. 음악 이외 직업을 하나씩 가진 프로 뮤지션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이들은 활발하게 활동한다. 지금까지 2장의 싱글과 2장의 정규앨범을 냈고, 매월 평균 2회 정도 라이브 무대에 오른다. 코로나 전인 2018년엔 한 해 동안 200회 이상 공연을 소화했다. 이날도 구미에서 공연을 마치자마자 대구로 와서 시인보호구역 무대에 올랐다.

◆즐겁게 오래
가을정원은 대구에서 살며 보고 느낀 소소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이들은 한때 시대정신이 담긴 노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공감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기로 말이다.
그래선지 팬들은 "가을정원 노래는 한 번만 들어도 귓가에 맴돈다"고 입을 모은다. 노랫말을 따라 적게 되고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노래다.
대다수 가을정원 노래는 최주민이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것들이다. 최주민이 작업한 데모 음원을 멤버들에게 들려주면 각자 자신이 연주하는 파트를 다듬는 식으로 편곡 작업이 이뤄진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대구 연습실에 만나 서너 시간 정도 합주한다.
"추구하는 음악은 따로 없습니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밝아졌죠."(최준형)
"멤버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간다는 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죠. 그렇게 완성된 게 바로 '가을정원 음악'이 아닐까 합니다."(최주민)
가을정원 멤버들에게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다만 지금처럼 매일매일 즐겁게 음악을 하는 게 이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꾸준히 오래 하는 밴드가 잘 하는 밴드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누구도 저희 밴드가 10년씩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지금처럼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며 멤버들과 즐겁게 음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최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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