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1950년 8월 1일~9월 24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축한 최후의 저지선이었다.
동시에 대구로 진출하려던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인천상륙작전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구국의 현장이라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며칠 전 방문한 다부동전적기념관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다부동 전투'라는 안내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기념관 외부에는 6·25전쟁 때 사용됐던 탱크 등이 전시돼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부동 전투를 설명하는 홍보자료와 전시물이 곳곳마다 구비돼 있었다.
하지만 방문객 발걸음은 뜸했다. 아예 귾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문객이 없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용사였다는 방문객 A씨(예비역 대령)는 "똑같이 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현장인데, 관람객이 줄을 잇는 통영 한산대첩 유적지나 제주 항몽 유적지와는 이곳 다부동전적기념관은 분위기가 판이하다"고 푸념했다. 이어 "북한의 도발로 안보 위기가 커지는 현실에서 하루빨리 다부동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 성지가 되고, 국민들이 안보의식을 새롭게 하는 성역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부동 전투서 배우는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1950년 8월 다부동은 6·25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이곳이 붕괴돼 대구를 빼앗긴다면 더 이상 북한군을 막을만한 시간과 공간은 없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다부동 전투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임시수도가 있는 대구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최후의 보루였기에 다부동 일대의 고지에서는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시산혈하(屍山血河·시체로 산을 이루고 피가 내를 이룬다) 그 자체였다.
국군 제1사단 장병들은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한 날 한 시로 하자"는 비장한 맹세 속에 혈전을 치렀고, 끝내 북한군을 물리쳤다. 치열했던 전투 현장은 ▷12일 동안 주인이 15번 바뀐 가장 처절했던 328고지 전투 ▷포탄이 볼링공이 핀을 향해 재빠르게 미끄러져 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이름 붙여진 볼링앨리(Bowling Alley) 전투 ▷북한군 포로가 된 미군장병 41명이 집단 학살당한 자고산 전투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며 승리를 거둔 유학산 전투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 신주막 계곡의 결전 등 55일간 다부동 전투의 역사속에 오롯히 남아 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1만여명, 북한군은 2만4천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다부동 전투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은 자신의 책 징비록에서 "전쟁은 한 민족의 중요한 경험이다. 어떻게 싸워 이겼고, 또 패했는가를 잘 살펴 약한 곳은 메우고, 강한 점은 더 키워야 우리를 해치려 다가오는 적에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고 했다.
실전으로 체득한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가 비록 평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부동 전투를 상기하라는 채찍으로 다가온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민국 위상의 근원, 다부동 전투 승리
다부동 전투가 벌어질 당시 미군 사령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낙동강 방어선 후방에 '데이비드슨 라인'을 구축해 두고 있었다.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되면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병력과 장비를 일본으로 철수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만약 다부동이 점령 당했다면 대한민국은 '망명정부'가 됐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전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막대한 희생을 통해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수출과 제조업 육성 및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후 세계 GDP 10위, 수출 8위, 국방력 6위의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원조받던 수혜국에서 OECD, G20 회원국으로서 유일하게 원조하는 지원국으로 변모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 다부동 전투의 승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방문객 북적이는 한산대첩·항몽 전적지
구국 전적지 정비 복원 등 성지화로 방문객이 북적이는 예는 많다. 임진왜란 최대 전투 현장인 통영 한산대첩 전적지에는 역사마을 탐방코스가 마련돼 있다.
각 마을 지명이 한산대첩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역사 이야기와 연계한 '역사 속 머무는 여행지'로 조성됐다. 통영시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탐방과 체험으로 관광자원화해 새로운 관광거점지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애월읍 항파리 항몽 유적지는 1977년 토성을 복원하고 순의비·순의문·항몽유적기록화 등을 만들어 국난극복의 교육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본래 관광객의 발걸음이 없었지만 매년 복원·정비를 거치면서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보려는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임진왜란 첫 육상 승전지 전북 진안·완주의 웅치전적지는 국가사적 지정을 받는다. 전북도와 진안·완주군은 2019년부터 웅치전적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 등 웅치전적지의 위치와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웅치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기관·단체·지역사회의 관심도 상당했다.

◆경북호국재단 출범 다부동 성역화 청신호
다부동의 성역화는 해당 지자체장과 광역단체장의 의지가 강한만큼 전망은 밝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6월 다부동전적기념관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 추모식서 "민간사회단체와 협의해 내년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백 장군 등 전쟁 영웅들의 동상을 세우고 다부동전적지를 성역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도지사는 백선엽 장군 서거 때 서울 빈소와 다부동 분향소를 잇따라 방문해 조문했고 1, 2주기 추모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호국의지가 강하다.
김재욱 칠곡군수도 "다부동전적기념관이 국가 현충시설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우리 곁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주변지역 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대구 군부대가 유치되고 다부동 성역화가 이뤄지면 칠곡은 진정한 호국평화안보의 중심고장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반겼다.
경북도는 경북호국재단을 출범시켜 국가지원 없이 기초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지역 주요 현충시설을 재단에서 관리해 경북이 독립·호국·통일의 메카로 자리매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중 다부동전적기념관은 전쟁기념관(서울)과 유엔군초전기념관(오산)과는 달리 6·25전쟁 전투현장에 존재하는 유일한 전쟁기념관으로 국가차원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시설로 평가받는다.
이철우 도지사는 "경북은 독립운동의 발상지, 6·25전쟁 최대 격전지로 호국보훈의 역사적 숨결이 살아있는 지역"이라며 "호국재단 설립을 통해 독립과 국가수호 정신이 나라사랑 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경북이 선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 장녀 백남희 씨는 "아버님이 프랑스 대사로 계실 때 저를 데리고 유럽의 많은 전쟁터를 둘러보시곤 하셨는데, 유명한 전쟁터는 많았으나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 전투는 드물다고 생각된다"면서 "칠곡 다부동 전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전투다. 워털루가 세계의 유명한 전투지 듯, 칠곡 다부동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전투지로 세계에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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