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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퍼펙트 스톰이 밀려오는데

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에서 어린이들이
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에서 어린이들이 '핼러윈 몬스터 파티'(Halloween Monster Party)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기업금융시장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한다.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도 사겠다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AAA 신용등급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도로공사도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한 수준이다. 시중에서는 중견 건설사와 증권사들이 잇따라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루머마저 나돈다.

레고랜드 사태는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 개발사(강원중도개발공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 2천억 원에 대해 강원도가 채무 상환 리스크를 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촉발됐다. 2천억 원이라면 국내 기업금융시장에 위기를 불러올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국내 자금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파장이 커진 데에는 강원도의 잘못이 크다. 김진태 지사는 전임 최문순 지사 당시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와 맺은 지급보증을 사실상 무효화했다. 광역지자체의 지급보증을 믿고 투자를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다.

김 지사는 전임 도지사의 정책적 잘못을 바로잡고 강원도에 부채를 떠안기지 않겠다는 요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사안에 접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비효과' 트리거를 눌러 버린 격이 됐다. 뒤늦게 강원도는 2천억 원 전액을 상환하겠다고 밝히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시장(市場)과 맺은 약속은 수장(首長)이 바뀌더라도 지켜야 한다. 정책이 시장(市場)의 신뢰를 잃을 때 어떤 결과가 나는지 우리는 영국 트러스 총리의 실패를 통해 여실히 보았다. 경제위기 상황일수록 이 같은 신뢰는 더 중요하다.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로 세계 경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난 뒤에는 큰 경제위기가 닥쳤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지금 그에 버금가는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맷집은 매우 허약해진 상태다. 가계 및 기업, 정부의 부채가 선진 주요 국가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여기에는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 크다. 문 정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선례로부터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와 통화 팽창이 우리 경제의 거품을 키워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는데도 대비하지 않았다. 가계 빚이 1천800조 원을 넘겨도 태무심했으며 금융기관들의 탐욕도 제어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이러다가 큰일 난다고 경고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포퓰리즘 퍼주기로 국가재정 여력도 크게 훼손시켰다.

빚도 물려받는다. 전 정권이 한 저지레를 현 정부는 수습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 국민의힘은 수개월째 내부 투쟁 중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 방탄당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국정 동력이 필요한 윤석열 대통령은 낮은 국정 지지율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와중에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로 갈리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참 걱정스럽다.

글로벌 경제위기 때에는 약한 고리부터 무너졌다. IMF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바로 그 약한 고리였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세계적 경제 침체 등 퍼펙트 스톰이 몰려들고 있는 이 상황에 위정자들에게 고한다. 제발, 정신들 바짝 차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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