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시 건천읍 건천초등학교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 그야말로 교정에 동심과 시심이 살아 숨쉬는 101년 역사를 가진 학교다.
나그네, 윤사월, 청노루, 물새알 산새알 등 주옥 같은 명시로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목월은 향토적 서정성으로 동심과 휴머니즘, 자연, 인간사 등을 아름다운 시로 재창조한 문학계의 거장이다.
6회 졸업생인 목월은 1916년 건천읍 모량리 571번지에서 태어나 건천초교를 매일 보자기에 교과서와 공책을 말아 허리에 동여 메고 십리가 넘는 신작로를 걸어 등·하교했다.
학교가 마치면 인근 금척왕릉에 올라가 놀거나 모량리 동네 어귀 야산 그루터기에 앉아 먼 들판과 노을을 보며 시심을 키웠다.
현재 목월 생가는 경주 서쪽 8km 지점 모량초교 앞 도로가에 있고 진현동에는 동리목월문학관이 지난 2006년 개관했다. 목월의 아들 박동규 전 서울대 국어국문학 교수도 건천초교 28회 졸업생이다.

건천초교는 1921년4월1일 4년제로 개교했다. 당시 신입생 나이는 8~15세였고 최고령 입학생 이달영은 23세였다. 1회 졸업생 수는 104명이었다.
하지만 건천에서는 이내 현대식 학교에 대한 호기심이 시들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당을 선택하게 된다 . 첫해 이후 20년간 졸업생 수가 50명 이하로 머물다가, 1940년이 지나면서 한학년 학생수가 100명을 넘기면서 학교가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30년대 건천초교 생활상은 많이 어려웠다. 재학생 대부분이 짚신을, 넉넉한 집안 자녀들은 삼 등으로 만든 미투리를 신었다. 극소수 부잣집 자녀들만 고무신을 신었다.
1940년초 고무신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일제 패망 직전인 1943년이 되면 학교에서 고무신이 사라지고 대부분 짚신을 신었다. 일부 학생들은 맨발로 학교를 다녔다.
또 1930년초 공책 한권 1전, 지우개·연필 2전인 당시 물가 수준에서 월사금(등록금)이 20전에서 40전, 60전으로 올랐다. 이로 인해 가난한 시골 집안 자녀들은 건천초교 대신 월사금이 저렴한 리 단위 소재 간이학교를 다닐수 밖에 없었다.

건천초교 역사에는 아픔도 많다.
1929·1933년 입학생들이 학교측이 '공부 대신 농삿일을 시킨다'며 반발해 집단 시위를 벌였다. 당시 평균연령 18~23세인 재학생들이 농번기에 학교 소유 논 1천600여㎡와 밭 600여㎡ 농삿일에 자주 동원 된 것.
또 1937~1943년 입학생들은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으로 인해 한국 성씨를 일본 성씨로 바꾸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아직도 교적부에는 당시 학생들의 일본 성씨가 수정되지 못한채 그대로 남아있다. 6.25 전쟁 때는 1년간 학교를 군부대로 사용하면서 학생들은 마을사당이나 느티나무 밑에서 수업을 해야 했다.
건천초교에서는 분교 3곳이 생겨났다.
1943년 모량초교가 설립되면서 124명이 전학을 갔고 1962년에는 건천초교에서 거리가 너무 먼, 송선1리 산성마을 화전민(70호)을 위해 산성초교가 설립돼 36명이 전학 갔다. 산성초교는 96년까지 졸업생 405명을 배출한 후 폐교됐다.
64년에는 건천초교가 학생수 2천108백명으로 너무 커지자 천포초교(778명)를 분교했다. 읍내를 가로지르는 철길을 기준해 아래 동편은 건천초교, 윗쪽 서편은 천포초교로 지역을 나눴다.
건천초교는 지난 101년동안 졸업생 1만8천40명을 배출했고 현재 재학생수는 202명이다
건천초교는 지난 5월21일 100주년 기념행사를 백재환 동창회장(세무법인 누리 대표세무사)과 정지순 100주년사업추진위원장 등이 성대하게 개최했다. 또 졸업생들이 많은 학교 발전기금 등을 기탁해 지역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건천초교 졸업생 중 유명인사로는 이순우 우리은행장, 김헌백 새마을금고중앙회장, 김호길 외국어대 교수, 안영기 중소기업청장, 최해필 육군소장, 백수근 경주대추밭백한의원장, 김호진 경주부시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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