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때 영국은 소련의 핵 공격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모스크바 기준'(Moscow Criterion)을 채택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스크바 하나는 확실히 파괴하는 핵전력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현실적으로 소련과 동등한 핵전력을 보유할 수 없으니 소련을 멸망시키지는 못해도 고통을 줄 정도의 전력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핵 공격에서 가장 생존성이 높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제외한 핵전력은 모두 포기했다.('전쟁의 경제학', 권오상)
'비례억지전략'이란 프랑스 핵전략도 같은 발상이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침발라는 그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매우 작은 핵무기일지라도 목표물을 정확히 뚫을 수 있고 그 목표물이 아주 정밀하게 설정된다면 매우 위협적인 존재다. 특히 소련의 입장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핵전력은 미국과 소련에 비해 작지만 상대적으로 무섭고 흐릿하며 더 크게 보일 것이다."('성, 전쟁 그리고 핵 폭탄', 유르겐 브라우어·후버트 판 투일) 영국과 프랑스의 이런 선택은 미국의 군사전략가 버나드 브로디가 이름 지은 '절대무기'(absolute weapon)로서의 핵무기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 본질이란 핵무기는 재래식 무기처럼 양이 많고 위력이 클수록 우위에 서는 '상대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국의 급소를 정밀 보복 타격할 수 있다면 핵전력에서 열세여도 상대국으로 하여금 선제 핵 공격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 상대국의 '핵전력 우위'는 상쇄되는 것이다.
핵무기의 이런 속성은 북핵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 준다. 핵 보유이다. 자체 핵 개발이든 미국 핵의 재반입이든 핵 보유를 논외로 하는 그 어떤 대책도 본질에서 이탈한 소음(noise)일 뿐이다. 핵은 핵으로만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진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먼 나라 얘기다. 이 대표는 최근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론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믿는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것은 없다. 그야말로 무책임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는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말-"(전술핵 재배치 요청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을 되풀이한 것이다. 핵 무장 도미노를 우려하는 미국이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제1야당 대표로 그 당의 차기 대선 주자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인사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소리다. 문재인의 대북 유화정책이 그랬듯이 남한 국민을 북핵의 인질로 내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핵은 핵으로만 맞설 수 있다는 진리는 스웨덴이 재확인해 주고 있다. 스웨덴은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에 소련의 위협에 대응해 핵 개발을 추진했으나 1960년대에 '비핵화'로 돌아섰다. 소련 침공 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지켜줄 것이란 '희망'에다 국내 반핵 여론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스웨덴을 각성(覺醒)시켰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최근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핵무기 배치에 대한) 어떤 전제 조건도 달아서는 안 된다"며 핵 배치 가능성을 열었다. 이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셈이다. 크리스테르손 총리가 뭐라고 할까? "당신이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소리를 한다"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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