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인 신교육이 시작되던 20세기 초 지금의 김천시는 김산현(군), 개령현(군), 지례현(군)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각각 지역의 한학 교육을 담당하던 서당 혹은 항교를 기반으로 사립학교 설립 붐이 일어났다.
1902년부터 1910년 사이 김천지역에 설립된 학교는 모두 16개에 달한다. 대부분 교회나 지역의 유지들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된 학교들로 이 중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학교는 모두 3곳이다.
1906년 5월 지례현에 개교한 일중소학교는 현 지례초등학교로 같은 해 10월 개교한 광흥학교는 현 김천초등학교, 1908년 1월 개교한 개진학교는 현 개령초등학교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 학교 모두 지역유지들이 출연한 재산으로 사립학교 인가를 받아 지역의 서당 혹은 향교에서 교육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중 지례초등학교의 설립 시기는 기록이 명확치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지역 항토사학자 문재원 씨는 당시 지례현감(군수) 김황진이 지례향교에 학생 60명을 모아 1906년 개교한 일중소학교가 지례초등학교의 전신이라고 기억했다. 지례초등학교도 1906년 일중소학교로 개교해 1912년 지례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고 학교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운영 중인 학교알리미 사이트와 경상북도교육청은 1912년 설립인가 시점을 학교 개교일로 기록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다만 지례초등학교 1회 졸업식이 개교 불과 1년 후인 1913년 3월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중소학교가 지례초등학교의 전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명확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
1906년과 1912년 사이의 기록으로는 지례현감이 일중소학교를 건립해 운영하다 일시 폐교했고 2년 뒤인 1908년 현감 이재택이 일중보통학교로 개칭하고 향교를 수리해 교사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찾을 수 있다.
개교 후 1938년에 '동산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바꾼다. 1941년에는 '동산공립국민학교', 1945년 '지례공립국민학교', 1949년 '지례국민학교', 1996년 '지례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3년에는 구곡국민학교가 지례국민학교에 통폐합됐으며 2016년에는 부항초등학교가 분교장으로 편입됐다.
2022년 1월 제110회 졸업식 후 졸업생 수는 모두 6천476명에 달한다.
현재는 본교인 지례초등학교 5학급, 부항분교 3학급 등 8학급 규모로 22명이 재학하고 있는 작은 농촌 학교로 규모가 줄었다.
지례초등학교는 학생수는 줄었지만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통해 100년 학교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례초는 김천부항댐 건립 후 수몰지역 주민들을 위한 김천부항다목적댐 지원사업에 따라 매년 약 1천5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창의·융합형 인재양성 프로젝트를 특수시책으로 운영하고 있다.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의 내용을 융합하고 체험하는 STEAM 수업을 진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제40회 경상북도청소년과학탐구대회 융합과학부문에서 6학년 재학생이 금상을 받아 경상북도 대표로 2022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9월 부임한 김점옥 지례초등학교장은 "학생들에게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창의·융합능력을 키워주는 STEAM 메이커 교육을 통해 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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