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임 없으면 돈 안줘…" 수능 마친 고3 노리는 '악덕 고용'

지역 최저임금 위반률 40%, 근로계약서 미작성도 44%
그루밍 성범죄 위험에 노출
"청소년 체불 임금 지급 담보하는 시스템 마련돼야"

수능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 현장에 뛰어든 청소년들이 악덕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수능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 현장에 뛰어든 청소년들이 악덕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지난해 수능을 치른 뒤 올해 1월 대구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A(20) 씨는 부당한 근로계약을 맺고도 항의조차 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해야 했다. 계약서에는 '일을 그만두기 전에 후임자를 구해야 한다. 인수인계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어 지역 청년단체를 통해 계약서가 위법한지 확인했다"면서도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잘릴 수도 있고 법적인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의 '첫 노동'이 상처로 얼룩지고 있다. 이들은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미준수, 그루밍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다. 특히 올해 대구경북의 최저임금 위반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사단법인 유니온센터와 청년유니온이 만 34세 이하 청년 노동자 500명(대구경북 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아르바이트 최저임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지역의 최저임금 위반율은 39.8%로 집계됐다.

위반율이 두 번째로 높은 광주전남전북(22.4%)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는 수치다. 대구경북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사업장 10곳 중 4곳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대구는 전국적으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가장 낮은 지역"이라며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임금 교섭력이 더욱 떨어져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예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사례도 빈번했다. 지난해 대구청년유니온이 만 24세 청소년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구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2%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19.5%나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까지 받았다'는 청소년은 36.4%였다.

문제는 청소년 대부분이 '악덕 고용'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문제를 제기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다 보니 대응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을 보고 대구 동성로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B(19) 양은 "출퇴근할 때 본인 차량을 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사장이 내걸었다"며 "불쾌한 의도가 있는 것 같아 견디지 못하고 며칠 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서홍일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학생이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기는 어렵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이후에 체불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