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그러셨지요, "내가 없으면 저 마당 텃밭은 누가 하며 집은 누가 와서 살겠느냐"고. 허공을 바라보면서 애써 외면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벌써 1주기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초롱초롱 하시더니, 잠깐 사이에 꽃이 진다는 사실 앞에 어리석은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절절한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텃밭에 비트를 심어 엑기스로 나눠먹고, 후작으로 배추를 심어 동생들과 같이 김장도 하면서 어머니 뜻을 받들어 우애있게 지내려고 고향집에 더 자주 모입니다.
자기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겨짐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천년만년 사실 줄만 알았습니다. "어머니 됐어요", "알아서 한다니까요"라고 할 때도 많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시면 수다스럽다면서 오히려 역정을 내고했던 것이 왜 이리 가슴에 사무칩니까.
"결혼을 하면 정신대 처녀 공출을 피할 수 있다"는 중매에 속아서 열다섯 나이에 백전 부잣집에서 시집오셨다고 그랬지요. 그 어린 나이에도 길쌈으로 한 삼베를 손수 바느질까지 하여 지아비 옷을 만들어 입힌 반듯한 규수였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힘들어도 마다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머니의 삶은 잊은 채 이날 이때까지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으시면서 자기 몸보다 몇 곱절을 혹사하면서도 친정가서 "시집살이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셨다고 그랬지요. 그것은 어머니의 자존감으로 없음을 있음의 근본으로 삼아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였습니다. 한평생 쥐어진 호미가 붓이었다면 일가를 이루어 뭐라도 했을 우리 어머니. 삼베실꾸리처럼 감긴 어머니의 역사를 바쁘다는 핑계로 다 풀어 드리지 못해 이제와서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몇년 전 어느 날이었지요. 무릎이 아파 보행이 불편한 어머니께서 은연중에 "팔공산 갓바위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었지요. 가파른 계단에 어머니를 업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 "힘든다"면서 애처로워 하셨지요. 오르고 또 오른들 어머니가 오남매 들쳐 업고 들로 산으로 일하러 다닌 평생 동안의 삶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소자는 한 발 한 발 오를 적마다 수행자처럼 회개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런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로운 일이란 것을 새삼 느끼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머니! 이제 기댈 곳이 없어 너무도 힘듭니다. 명절이면 기다려지던 구수한 손두부며, 시원한 밥식혜를 어머니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면서 해마다 그렇게 하신 어머니의 손맛을 어찌합니까.
낙상을 하면서 어머니의 세상은 방에서 거실까지가 전부였지만 구십이 넘은 연세에도 천리 밖 귀 열어 열두 명 손자 손녀들 사정 다 살피고 일가 친척 집안 대소사 챙겨 예법 다 하시고 주민번호까지 외우셨으니 얼마나 총기 있게 제 몫을 알아 하셨는지요.
어머니 가실 적에 안동포로 만든 수의도 준비하셨더군요. 그뿐입니까, 딸 둘 며느리 세명의 상복을 안동포로 삼베 치마까지 마련하시고 상주 백관들의 두건이며 손자 손녀 베띠까지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로 준비하신 건 초연한 어머니의 단정한 인품이었습니다
고향 갈 때마다 어머니가 계시는 천국으로 간다고 육십이 넘어도 좋아했는데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도덕경에 "그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고 하여, 그 어머니로 돌아가 지키면 삶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인생사가 가는 것도 오는 것만큼이나 반가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실 말씀도 많았을 어머니, 부디 극락 왕생하시어 평안하시길 바라옵니다. 둘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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