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잠을 못 잤었어요. 문득 억울하고 화가 나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데 속으로 삼킬 뿐입니다. 어쩌겠어요."
'대구판 빌라왕' 전세 사기사건(매일신문 2월 1일·6일·3월 13일) 피해자 A씨는 군 단위의 작은 도시에서 살다가 취업을 위해 대구로 왔다. 크지 않은 월급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전세로 들어간 곳이 '깡통'일 줄은 몰랐다. A씨는 "꼼꼼히 따진다고 따졌는데 피해자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착잡하게 말했다.
대구 남구, 서구 등에 빌라 6채 임차인 77명을 상대로 54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받고 잠적한 집주인이 지난 13일 경찰의 추적 끝에 한 달 만에 검거됐지만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은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몇 달째 잠에 들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집주인이 잡혔어도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반포기 상태라고 전했다.
A씨는 "같은 빌라에 사시는 분 중에는 건강까지 악화돼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계시는 분도 있다"며 "무엇보다 피해자 중 2030 청년들이 절대다수라 결혼을 준비하다가 이번 사건으로 포기한 사람도 있고, 이제 막 취업했는데 1억원이 넘는 빚만 지게 된 20대 중반의 피해자도 있다"고 말했다.
1억원대의 피해를 본 B씨는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 체념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다"며 "평소 즐기던 취미생활도 다 접었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피해자들은 집주인이 붙잡혔더라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요원하고, 부동산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돌려놓으면 회수할 방법도 없다고 우려했다. 서구 한 빌라의 임차인인 C씨는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는 게 가장 우선인데, 범인이 잡혀도 보증금 반환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형사 절차 외에 민사 절차를 밟고 싶지만 전세금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금전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경찰과 피해자들에 따르면 검거된 집주인 명의 건물은 대구 도심에만 최소 6채에 달한다. 남구 대명동에 B(17가구), C빌라(10가구), 서구 내당동에 D빌라(15가구), 평리동에 E(10가구), F빌라(9가구), 달서구 송현동에 G빌라(20가구) 등 81가구다.
경찰은 피의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남은 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범행에 가담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추징 절차를 통해 최대한 압수할 계획"이라며 "피의자의 휴대전화 내역을 복구하면 이번 일에 공모한 다른 피의자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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