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댁(고 박금분 씨의 택호), 나 유촌댁(안윤선 씨의 택)이오. 아포댁이 세상 떠난 지 한 달 쯤 됐나? 좀 넘었나? 어쨌거나 세상 떠나고 나서 그리운 마음이 컸는데 신문사에서 찾아와서는 아포댁 이야기를 좀 써달라고 해서 좀 적어봅니다.
우리 복성2리 일곱 할매들 공부할 때 생각해보면 아포댁이 참 열심히 했지요. 평소에도 품성이 점잖고 말수도 적고 조용한 사람이어서 그랬는가 몰라도 공부하면 참 집중도 잘 했어요. 공부할 때면 "말 많이 하면 신경이 다른 데 쓰여서 공부가 안 된다"며 정신 딱 차려서 글씨도 쓰고 배우고 그랬었지요. 그 때 공부하면서 "한 자라도 배우니 좋다"며 열심이었던 모습이 자꾸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보니 우리가 글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인생이 재미있어진 거 같습니다. 노인회관에 우리 마을에 글 배우는 할매들이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는데 군수님하고 찍은 것도 있고 탤런트 강부자 씨하고 찍은 것도 있지요. 우리가 글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래저래 사람도 많이 만났네요.
그러다보니 책도 내 보고, 영화에도 나와보고 별별 것들 다 해 봤네요. 책 처음 나왔을 때 기억합니까? 한 글자씩 배우면서 읽어보니 참 좋았지요. 처음에는 뭔 글자인지 모르다가 어찌어찌 한 글자씩 읽어나가니 그게 그렇게 좋습디다.
아포댁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랬습니다. 늘 마을에 왔다갔다하며 보다가 갑자기 세상 떴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저 놀랬습니다. 평소에도 크게 아픈데도 없고 해서 건강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그리 됐으니 같이 공부하던 할매들도 그렇고 노인정에 오는 다른 젊은 사람들도 많이 놀라고 마음이 안 좋다고 합니다.
요새 마을에 남은 할매들은 아포댁 세상 떠나기 전과 비슷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귀가 조금씩 잘 안들리기 시작합니다. 몇몇 할매들은 마을 근처에 요양병원이나 '노치원'이라고 부르는 데를 다니드만요. 노인회관 오면 다들 화투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집으로 가고…. 대신에 요양병원이나 '노치원' 다니는 할매들은 노인회관 안 들리고 바로 집으로 가기도 해서 요새는 가끔씩 얼굴보고 그럽니다.
그리고 또 슬픈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랑 같이 공부하던 등계댁도 아포댁 뒤를 따라갔어요. 아포댁 떠나고 얼마 안 돼서였을겁니다. 며느리와 저녁 먹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다시 못 일어났다 하더군요. 등계댁이나 아포댁이나 크게 아픈 데 없이 지내서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산 사람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다르게 생각해보면 너무 아파서 끙끙 앓다가 세상 떠나는 것보다 덜 힘들게 간 거라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자꾸 같이 마을에서 세월 함께 보낸 사람이 자꾸 떠나가니 마음이 좋을 리가 없지요.
아포댁 생각하면서 옛날 추억 끄집어내려고 하니 나도 나이가 많아서 기억이 오락가락합니다. 올해 들어서 더 그렇네요. 그래도 글 배운다고 노인회관에 상 펴놓고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쓰던 때는 계속 생각이 나네요.
돌아가신 아포댁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지만 아포댁이랑 함께 글 배웠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안 잊어버리고 갖고 가지 싶습니다. 아포댁, 뒤따라간 등계댁 잘 챙겨주시오. 남은 할매들은 여전히 떠난 당신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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