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가 리스크'에 시름 깊어가는 경제주체들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산유국의 '깜짝 감산' 발표 이후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겨우 진정된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고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원유 수입량이 많은 데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도 높아 유가의 물가연동성이 높다. 특히 이번 '유가 리스크' 나비 효과로 미국 금리 인상, 달러화 강세까지 불어닥친다면 한국으로서는 무역 적자가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국내 경제주체들의 경로에 짙은 안개(불확실성) 길이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유가 급등이 집값 2차 하락 부를까

안정 추세를 보이던 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자발적 감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가 5월부터 올해 말까지 자발적으로 하루 116만 배럴 규모를 추가 감산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 내 원유 생산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감산을 유지 중이어서 실제 추가 감산 규모는 하루 160만 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감산 조치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내 기준금리 상단이 4%까지 올라설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이 같은 전망에 가장 불안함을 보이는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금리 인상은 자연스레 경제 주체의 금융 부담으로 작용, 부동산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 2차 하락이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와서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2011~2014년 부동산 침체의 주요 원인은 고유가와 고물가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었을 정도로 부동산은 거시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금리가 현재 수준으로 계속 유지된다면 수요자들도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고,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 흐름이 오를 수 있다. 대구의 아파트 분양전망지수가 두 달 연속 오름세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면서 "그런데 자칫 이번 상황이 과거와 같이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가 변수가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문제지만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 여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며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분양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결국에는 주택 수요를 위축시켜 부동산 가격에 추가 조정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환율에 바짝 긴장한 항공, 운송업계

금리 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6일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85.12달러, 미국유가 기준물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80.7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배럴당 60달러대까지 내려가며 하락세를 보였던 국제유가가 80달러를 넘긴 것이다. 시장에서는 배럴당 100달러 유가 시대가 임박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에 항공업계, 운송업계 등 에너지 대량 소비기업의 긴장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비행기에 쓰이는 항공유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항공유 가격 상승분은 고스란히 유류 할증료에 적용돼 결국 소비자가 최종 구매하는 항공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항공사는 고정 지출 비율 중 30%를 유류비에 소비하는 탓에 유가가 오르면 수익성도 나빠진다. 일례로 대한항공은 연간 약 3천만 배럴의 항공유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약 3천만달러의 손해를 입는 셈이다.

만약 유가 상승이 강달러를 불러오면 달러로 유류비, 항공기 리스비를 거래하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이미 국내 항공사는 지난해 고환율 여파로 외화 환산 이익이 외화 환산 손실로 전환하는 환율 상승 후유증을 겪은 바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해 2분기 2천51억원의 외화 환산 순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나항공도 2천74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고속·시외버스 업계도 위기감을 느낀다. 이미 지난해에 업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속·시외버스의 주 사용연료인 경유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연료비 부담에 직면했다. 정부가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금호고속이 직원의 20%를 유·무급 휴직하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연명해야 했을 정도. 그런데 또다시 유류비 부담을 직면하면서 업계의 위기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유가 리스크에 전기요금도 오르나

국제유가 급등으로 유류를 포함한 연료비가 상승하며 한국전력공사의 전력 도매가격(SMP)도 들썩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고스란히 민생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SMP는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도매가격을 말한다. 지난달 평균 SMP는 ㎾h당 215.9원. 지난해 12월 ㎾h당 267.63원까지 치솟았으나 올해 초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며 하락했다. 하지만 SMP에 발맞춰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단가는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한전이 발전사에 전기를 비싸게 사 와서 싸게 팔게 돼,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불어났다. 지난해 한전의 적자는 32조6천34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SMP를 결정하는 연료비가 상승해 한전의 적자는 더욱 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지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경유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인상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근원물가를 끌어올리는 셈이 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31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이 당정협의회를 개최했으나 한전의 재무건전성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미룬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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