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가이드라인' 시행 첫날…현행법과 엇박자로 실효성 의문(종합)

여전히 치우지도, 철거하지도 않은 현수막 다수

8일 오후 서부정류장역에는 여전히 정당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서부정류장 앞 공원의 경우 좁은 공간에 4~5개의 현수막이 동시에 걸려있기도 했다. 그 중 몇 개의 정당현수막은 게시기한이 한 달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한소연 기자
8일 오후 서부정류장역에는 여전히 정당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서부정류장 앞 공원의 경우 좁은 공간에 4~5개의 현수막이 동시에 걸려있기도 했다. 그 중 몇 개의 정당현수막은 게시기한이 한 달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한소연 기자
8일 오전 대구 북구 침산네거리 횡단보도 옆에는 정당 현수막이 낮게 설치돼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모습이었다. 윤수진 기자
8일 오전 대구 북구 침산네거리 횡단보도 옆에는 정당 현수막이 낮게 설치돼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모습이었다. 윤수진 기자

도심 흉물로 자리 잡은 정당 현수막의 난립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첫날에도 각종 정치 구호를 담은 현수막들이 나부꼈다. 일선에서는 정부 방침과 현행법이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오전 대구 북구 침산네거리 횡단보도 옆에는 "글로벌 호구! 국민만 죽어납니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줬다. 낮은 위치에 설치된 탓에 일부 보행자들은 현수막을 피해 빙 둘러서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했다.

매일 자전거로 이곳을 지나간다는 양형만(71) 씨는 "허가를 받았더라도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며 "횡단보도 옆에 이렇게 낮게 현수막을 설치하면 지나가다 머리가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달서구 월성초 인근 횡단보도와 달서구청 맞은편 인도에서도 이런 정당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달서구 주민 김선주(38) 씨는 "어린이보호구역에 굳이 정치인이 내건 현수막을 설치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도시 미관 차원에서라도 정당 현수막은 정해진 게시대에만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은 행정안전부의 '정당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시행하는 첫날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버스정류장 등 사고에 취약한 지역엔 설치 금지 ▷가로등이나 가로수에 2개 초과 설치 금지 ▷보행자가 통행하거나 차량 운전자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은 2m 이하 높이로 설치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남구 서부정류장 인근에는 전봇대를 이용한 현수막들이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좁은 공간에 4~5개의 현수막이 동시에 붙어있는 경우도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수성구 범물동 한 네거리에는 게시일이 며칠이나 지난 정당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현수막 철거를 담당하는 각 구청 담당자들은 정부의 기준이 현행법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행안부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 현수막은 설치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당 현수막 설치를 제한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6건 발의되었으나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지자체 차원의 본격적인 조치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행안부 가이드라인은 권고사항에 가깝다. 위반 현수막이 있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강제 철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관련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이전처럼 정당에 협조를 구해 현수막을 이동시키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 정치계는 정부가 세운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관계자는 "각 당협에 협조 공문을 보내 정부의 기준을 준수할 예정이다. 위반사항이 있다면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횡단보도와 어린이보호구역을 중심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다만 최소 한 달 정도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8일 오후 대구 달서구 월성초 인근 횡단보도에 정당 현수막이 설치된 모습. 신중언 기자
8일 오후 대구 달서구 월성초 인근 횡단보도에 정당 현수막이 설치된 모습. 신중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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