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금호강 팔현습지 보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승렬 상임대표(영남대 영문과 교수)

이승렬 영남대 교수
이승렬 영남대 교수

한때 세계의 대도시들은 개발을 통해 경제 규모를 키워 자본을 축적하여 그 성과를 통해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 한 사회의 성공 스토리와 동일시되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조작된 것이든 잘 살아보고자 하는 염원 때문이었든, 대중들의 인식이 그러했다. 여기엔 진보·보수 진영 차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개발이 되면 자신의 삶터의 건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가 올라가 기후위기는 가속화되며, 개발이 되어도 자신의 일자리는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주거비용만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부작용이 거의 임계점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170억 원의 혈세를 들여 금호강의 보물 같은 3대 습지 중 하나인 팔현습지를 관통하는 교량형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도로가 놓이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나 그 위를 걸어가는 이들은 기분을 좀 낼지 모르겠으나 도로를 놓는 과정과 도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팔현습지를 금호강의 자랑거리로 만들어주는 얼룩새코미꾸리를 비롯한 12종의 법정 보호종들이 서식하는 금호강에는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별일 없다" "멸종위기종들도 변화된 환경에 다시 적응해 살 것이다" "주민들이 원한다" 등등 개발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보수의 성지, 대구의 위정자들이여, 보수주의자인 당신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국가적 진보의 상징이었던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다 죽었다 살아난 금호강에 대한 과도한 개발은 언제든 금호강을 다시 죽일 수 있다. 멸종위기종이 겨우 돌아온 금호강에서의 변화는 지극히 조심스러워야 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개발은 멈춰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인 당신들이 해야 할 말은 이런 것이다. 더더군다나 환경보전의 임무를 업무의 본령으로 삼는 환경청이 환경 피해를 시인하면서도 생태민감지역에 도로 건설을 허용하는 것은 직무유기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제천간디학교의 청소년들이 며칠 전 팔현습지를 탐방하고 남긴 말을 되새겨보자. "왜 미꾸리의 집을 부수려 하는가?" 금호강 고유종 얼룩새코미꾸리나 금호강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모두 자연의 일부로서 공생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어린 학생들은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거부하고 있는 것은 토건 자본과 정치권력 사이의 유착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앗아가는 어른들의 행태다. 학생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강변의 왕버들 나무들이 어른들의 무분별한 인간 중심의 행태로 인하여 무참히 잘려 나가는 일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개발행위는 더 이상 창조적 파괴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무자비한 파괴 행위일 뿐이다.

습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강물의 흐름 자체를 바꿔 놓겠다는 무모한 개발계획이 얼마나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것인지 고개를 들어 세계의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라보라. 사디크 칸 런던시장, 안 이달고 파리시장, 미국의 750개 도시 시장들의 연대체인 '기후 시장들'. 이들은 한결같이 도시의 난개발을 억제하고 숲과 강의 생명 다양성을 보호하며 기후위기 타개를 위한 리더십을 시정의 중심에 놓고 있다. 주민들에게 공지조차 이뤄지지 않은 주민설명회와 멸종위기종을 백안시하는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터무니없는 엉터리 행정 절차로 주민을 무시하는 환경 파괴 정책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며 우리의 미래를 닫아버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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