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TK 물갈이'라는 유령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TK 물갈이'론이라는 유령이 또 지역 정가를 배회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령이다. 유령이 나타났을 때 동네는 소란하나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공허하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서 걱정이다.

물갈이론은 모든 선거에 나오는 것이다. 현역에게는 못마땅한 것이겠으나 정치 신인들에게는 가슴 두근거리는 말이고 유권자들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다. 엘리트 순환을 통해 정치체제를 건강하게 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TK 물갈이'론은 유난히 시끄럽다. 이유가 뭘까? 이 지역에서 뽑은 국회의원에 대한 만족도가 '특별히' 낮기 때문이다. 대구시장이 일갈한 바도 있지만,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뽑아 놓았더니 '서울 가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어디 가서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표현을 이 지역 유권자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밥값을 못 한다는 얘기다.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이런 추궁에 볼멘소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다른 지역 정치인과 비교해서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특별히 게으르고 무책임한가? 여의도에 가서 눈에 뜨이는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열정도 없는가? 그들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그들의 반론이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인데 이 지역 정치인들이 특별히 무책임하다고 할 이유가 있는가? TK 정치인 가운데는 주요 정치 의제에 중심 역할을 하는 이도 있고 정당이나 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아 일하는 이도 있다"라고 말한다.

'TK 물갈이'론이 끊이질 않고, 또 유난히 시끄러운 것은 TK 정치인 무임승차론과 무관하지 않다. 속된 말로, TK 정치인들은 쉽게 공천받아 쉽게 당선되었으니 쉽게 비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힘들이지 않고 당선되었다. 공천이 당선이었다. 그것은 무임승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쉽게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나태할 것이라는 추론이 나올 수밖에 없고, 공천이 당선이니 유권자를 섬기지 않고 위만 바라보고 국회의원 활동을 할 거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추론이나 의구심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TK 물갈이'론은 항상 요란했고 전체 물갈이 실적을 올리기 위한 땔감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물갈이가 요란하기만 했을 뿐 물갈이가 지역 정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갈이를 위하여 어떤 때는 '서울 TK vs 대구 TK'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고, 어떤 때는 '세대 교체 vs 중진 육성' 프레임이 형성되었으며, '진박 vs 가짜박' 프레임도 등장했다. 이런 것들이 지역 정치 발전을 목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진되었기 때문에 물갈이는 했는데 더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그래서 'TK 물갈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고 그것이 다녀가고 나면 우리는 다시 허탈해질 거라고 한 것이다.

'포시랍게'(호강스럽다의 경북 사투리) 국회의원 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를 어떻게 물갈이하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답은 지역 유권자들에게 공천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좋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세우고 그 틀에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공천권을 지역 주민들에게 주고 경쟁을 붙이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본다. 어떤 물갈이도 결정권이 위에 있는 한, 지역 정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현역이 더 유리하고 물갈이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적 경쟁 공천을 통해 얻을 것이 더 많다.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유령이 아니라 'TK 물갈이'론이 대구경북 정치의 역동성을 만드는 계기가 되려면 민주적 경쟁 공천이 꼭 필요하다. 낙하산으로 하는 'TK 물갈이'는 헛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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