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DC의 새로운 발견, 영화 ‘플래시’

빛보다 빠른 히어로 등장
액션과 유머 적절한 연출
배트맨·슈퍼맨 등 화려했던 히어로 시대 소환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슈퍼 히어로의 계보에는 두 가문이 있다.

마블 스튜디오와 DC 스튜디오다. DC에는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슈퍼걸, 캣우먼 등이 있고, 마블에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앤트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타노스 등이 형제로 있다. 두 집안 형제들이 큰 일이 생기면 올스타팀을 구성해 대응하는데, DC 가문에서는 이를 '저스티스 리그'라고 하고, 마블에서는 '어벤져스'라고 부른다.

DC는 1937년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에서 출발했다. 1967년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에 합병되면서 1978년 첫 슈퍼 히어로 영화 '슈퍼맨'과 1989년 '배트맨'이 제작돼 큰 인기를 모았다.

DC 가문의 형제들은 진지하고, 어두웠다. 반면 마블은 경쾌하고 트랜디해서 그동안 슈퍼 히어로계를 좌지우지했다. 그랬던 마블이 최근 들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두 가문의 흥망의 갈림길에서 DC의 역습을 알리는 작품이 바로 이번주 개봉한 '플래시'(감독 안드레스 무시에티)다. 플래시는 빛보다 빠른 스피드의 히어로다.

플래시(에즈라 밀러)는 소심한 청년이다. 원더우먼이나 배트맨처럼 확신도 없고, 배가 고프면 초능력이 방전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못 걸고, 카페에서 주문도 제대로 못한다.

어머니는 살해됐고, 아버지는 아내 살인 누명까지 쓰고 재판 중이다. 증거도 불충분해 이러다가는 부모를 모두 잃을 위기를 맞았다. 그는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살해되기 전으로만 돌아가 바로잡는다면 부모님 모두를 살릴 수 있다.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플래시는 뒤틀린 시공간에서 18살의 또 다른 자신을 만나면서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진입시킨다. 이 18살의 플래시는 내성적인 플래시와 달리 얼렁뚱땅 '노답'의 캐릭터다. 전혀 다른 둘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셈이다. 부모님을 살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을 통해 플래시의 서사가 축적된다.

이어 지구가 대 위기를 맞는다. 클립톤 행성의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이 지구로 와서 칼 엘(슈퍼맨)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이들은 수십억 명의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집어삼킬 야욕을 가지고 있다. 둘 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원군을 청하러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찾아간다. 그런데 알고 있던 그가 아니다.

플래시는 이제까지 DC가 가진 가문의 DNA를 완전히 바꿨다. 서사는 입체적이고, 액션은 밀착되고, 유머 또한 적절하다. 느슨하게 앉아 있던 관객을 곧추세우는 힘이 있다.

영화는 관객이 플래시의 캐릭터에 어느 정도 친숙해졌을 때 전혀 다른 상황 속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뒤틀린 시간에 다중우주(멀티버스)를 끌어와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런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겉핥기가 아니라 제대로 녹아든 느낌이다. 그들이 찾아낸 브루스 웨인은 다름 아닌 1989년에 화려했던 배트맨(마이클 키튼)이다. 이제 나이 들어 은퇴한 상태. 배트모빌도 먼지만 쌓여 있다. 진보된 배트윙을 타고 슈퍼맨을 찾아 나선다.

추억의 히어로를 만나는 반가움에 새롭게 등장한 슈퍼걸(사샤 카예), 다중 우주로 만나는 1978년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까지 가장 화려했던 DC 히어로의 시대를 소환한다. 31년 만에 배트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캐스팅이다. 그들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에 추억이라는 서정성까지 이어붙인 것이다. 그래서 플래시와 어머니의 애틋하면서 눈물겨운 성장담을 견고하게 떠받친다.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플래시는 각본까지 쓴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유머의 쓰임새를 알고 과도하지 않게 연결시키고, 액션 또한 특성을 잘 살렸다. 노배우의 응축적인 대사에 메시지도 담았고, 추억과 회한이라는 정서 또한 히어로의 여러 요소에 잘 이어 붙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그래픽 노블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캐릭터를 끄집어 숨을 쉬고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하겠다. 초능력의 힘으로는 DC의 위력이 가장 셌다. 슈퍼맨이라는 외계인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특유의 그로테크스한 DC의 DNA 때문에 캐릭터들의 생동감은 떨어졌다.

그러나 플래시의 경쾌함은 한때 잘 나가던 마블의 시대를 보는 듯하다. 유머와 액션이 절묘했던 '아이언맨'(2008)이나, 애국과 불굴의 의지를 잘 보여준 '퍼스트 어벤저'(2011)의 그때 말이다.

플래시는 히어로의 아련한 추억과 이미 지나간 시간까지 담아내 준다. 빠른 것 하나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어 만년 조연일 것 같던 그가 DC 가문을 살릴 홍길동(?)이 될 지도 모르겠다. 144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영화 '플래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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