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31살, 26살에 세상 떠난 남편과 아들…마지막 남은 딸까지 '소뇌위축증'

현장관리직이었던 남편, 31살 젊은 나이에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세상 떠나
남은 아들과 딸 둘 다 '소뇌위축증'…아들마저 지난해 호흡곤란으로 눈감아
마지막 남은 딸만은 지키고 싶지만 1년 1400만원 달하는 비급여 약값 '막막'

지난 28일 서유진(23) 씨가 어머니 박현숙(50) 씨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28일 서유진(23) 씨가 어머니 박현숙(50) 씨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을 다녀오고 있다. 윤정훈 기자

"으아아아아아아!"

한밤중, 딸아이가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작은 빌라 전체가 딸의 울음소리로 흔들리는 듯했다. 곧바로 박현숙(50) 씨가 거실로 뛰쳐나왔다. 아랫집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올라온 적이 있기에 필사적으로 달래고, 또 달랬다. 딸이 조금 진정되자 현숙 씨는 수첩과 볼펜을 건네며 왜 울었는지 물었다. 딸은 숨을 헐떡이며 글을 써 내려갔다.

'내가 너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혼자 화장실에 가려고 도전했다가 주변에 순간 잡을 게 없어 균형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다. 어린 시절 속 한번 썩인 적 없이 순조롭게 대학까지 갔던 딸이었다. 그랬던 딸이 지금은 화장실 가는 것도 '도전'해야만 하는 몸이 됐다. 딸은 일상을 잃었고, 현숙 씨는 그런 딸을 잃는 게 두려웠다. 잃는 건 이제 지긋지긋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다.

◆31살 젊은 나이에…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세상 떠난 남편

고난을 모르는 삶이었다. 현숙 씨는 벼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별 탈 없이 성장했다. 물 흐르듯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을 6개월 정도 다니다 소규모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다. 그리고 24살 때,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먼 친척 오빠로부터 2살 위의 남자를 소개받았다. 1년 반 정도 연애 끝에 그와 결혼했다. 1년 후 아들이, 그로부터 3년 뒤 딸이 태어났다. 현숙 씨는 원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 근처 시장에 있던 유아복 매장에서 판매 일을 시작했다.

첫 고난은 2003년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태풍 매미와 함께 찾아왔다. 건설회사 현장관리직이었던 남편은 그날도 늘 입던 체크무늬 반팔 셔츠에 헌 운동화를 신고 회사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엔 통화도 했다. 그날 남편의 점심 메뉴는 삼계탕이었다. 꽤 맛있었다고, 언제 한번 오자고 남편은 말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 비가 무섭도록 내리기 시작했다. 매장 쇼윈도 너머로 비바람에 사정 없이 고꾸라진 가로수들이 보였다. 그러다 오후 5시쯤 남편의 직장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공사 현장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현숙 씨는 가게를 뛰쳐나와 허둥지둥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베이지색 작업복 차림의 남편은 이마에 조금 찢긴 상처만 있을 뿐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멀쩡했다. 그런데 남편은 왜, 병실이 아닌 안치실에 누워있는 걸까. 의사는 남편이 허벅지 대동맥 파열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았다. 믿기 싫었다. 대체 왜? 남편은 31살이었다. 고작….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했다. 현숙 씨는 다시 유아복 매장에 나가 돈을 벌었다. 이젠 고난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문제가 드러났다.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밥을 먹을 때마다 침을 자주 흘리고 음식을 잘 씹지 못했다. 타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했다. 학교에 있는 걸 싫어했던 아들은 틈만 나면 조퇴해 일하고 있던 현숙 씨를 자주 곤란에 처하게 했다. 하는 수 없이 근무시간이 긴 유아복 매장을 그만두고, 지역 홈쇼핑 콜센터로 직장을 옮겼다.

◆아들, 딸 모두 '소뇌위축증'… 아들은 이미 눈감고 딸만 남아

아들을 데리고 지역에 있는 정신과란 정신과는 다 가봤지만, 조울증이라고만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지적장애와 정신장애가 합쳐져 중증장애 진단을 받은 후 언어치료든 미술치료든 다 해봤지만 아들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17살에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 갔을 때 비로소 '소뇌위축증'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소뇌 부분에 퇴행성 문제가 나타나며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운동기능을 점차 상실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었다. 고2 때부턴 다리 근육이 빠지기 시작해 홀로 걷지도 못하는 등 아들의 증상은 나날이 심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엔 호흡도 어려워져 응급실에 실려 가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지난해 1월 결국 아들은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을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선천적으로 온순한 성향이라 애 한번 먹여본 적 없던, 예민한 오빠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늘 희생을 자처했던 딸 서유진(23) 씨마저 대학교 2학년 때 아들과 같은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머리가 멍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들과 달리 정상적으로 학교도 다니고, 교우관계도 괜찮았던 딸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현재 딸 유진 씨는 모든 근육 기능이 퇴화해 현숙 씨의 부축 없이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고, 혀와 얼굴근육에 문제가 생겨 발음을 제대로 못 해 현숙 씨와의 의사소통은 필담으로 나누고 있다.

현숙 씨는 딸의 치료와 돌봄에 전념하기 위해 콜센터 일을 그만뒀다. 현재는 유족연금 200만원, 장기요양급여 40만원, 국민연금 20만원 등 한 달 26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문제는 소뇌위축증 관련 약이 보험이 안 돼서 1년에 약값만 1천400만원 넘게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아들을 치료할 때 당시엔 몰랐던 약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 거기서도 딱 한 명의 교수만 처방할 수 있다는 귀한 약이었다. 값이 너무 비싸 처음엔 1년만 써보고 효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실제로 약 복용 후 딸은 잠도 푹 잘 수 있게 됐고, 그러니 감정 기복도 자연스레 줄었다. 6개월마다 약값으로만 700만원이 들어갔지만, 딸의 증상이 그나마 나아지는 걸 본 이상 약을 끊을 순 없었다.

주거 환경도 문제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는 계단이 많아 휠체어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딸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라도 한 날엔 그 다음날 몸살이 난다. 1층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지만, 약값을 모으기 위해 최소한의 생활만 하며 옷 한 벌도 쉽게 못 사는 현실에 새집은 그림의 떡이다.

오늘도 화장실에 가는 딸을 힘겹게 부축하고 있는 현숙 씨. 딸의 팔이 짓누르는 무게가 유난히 버겁게 느껴진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이번엔 딸의 체온을 느낀다. 손에 닿은 팔과 등이 따뜻하다. 시린 추억으로만 남은 남편, 아들과는 달랐다. 잠시 휘청이며 균형을 잃었던 현숙 씨는 다시 일어섰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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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교회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다 하나뿐인 아들 화상 입었는데 재활 수술비 마련할 돈 없어 막막한 강예은 씨에게 3,948만원 전달

화상을 입은 아들의 재활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막막한 강예은(매일신문 7월 18일자 10면) 씨에게 3천948만72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제일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도경희 1천만원 ▷정원수 5만원 ▷조재홍 5만원 ▷진국성 5만원 ▷김점숙 3만원 ▷김종균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최선태 2만원 ▷김갑용 1만5천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문민성 6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산으로 낳은 셋째 아이 온갖 병 시달려 치료도 벅찬데 이번 집중호우로 집, 밭, 차 다 망가져 괴로운 조선영 씨에게 3,091만원 성금

셋째 아이 병원비로 힘겨운데 이번 집중호우로 집, 밭, 차까지 다 망가져 괴로운 조선영(매일신문 7월 25일자 10면) 씨에게 45개 단체, 140명의 독자가 3천91만9천701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이일우)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법무사김태원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신세계로약국(박태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흥국시멘트상사 5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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