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위와의 전쟁] 땡볕에 달궈진 쪽방촌, 방 안 온도계를 보니 35℃

빈곤층 더위와의 사투…낡은 지붕 열기 그대로 흡수
경로당·은행에 쉼터 있지만 "눈치 보여서…" 무작정 버텨
건설현장 근로자 '극한 노동'…온열질환 가이드도 권고일뿐

폭염이 이어진 1일 대구 중구의 한 쪽방촌에서 노인이 창문도 없는 방에서 전기세 절약을 위해 선풍기도 틀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폭염이 이어진 1일 대구 중구의 한 쪽방촌에서 노인이 창문도 없는 방에서 전기세 절약을 위해 선풍기도 틀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살인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폭염의 불평등함'이 재차 부각되고 있다. 특히 쪽방에 살고 있는 빈곤층과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매일 더위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더워도 너무 더운 쪽방

1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향촌동의 쪽방촌. 60대 장동길(가명) 씨의 좁은 방은 잠깐 사이에도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로 뜨거웠다. 오래된 선풍기 한 대는 장 씨가 아닌, 손바닥만 한 창문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장 씨는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만 나올 뿐이다. 그나마 열기를 빼는 용도로는 쓸 만하다"며 땀을 닦았다.

여름은 쪽방촌 주민에게 더없이 가혹한 계절이다. 쪽방촌의 낡은 지붕은 단열 효과가 약해 바깥의 열기를 거의 그대로 흡수한다. 대기 온도를 낮춰주는 녹지가 주변에 있는 곳도 거의 없다. 결국 뜨거운 태양열은 고스란히 집안으로 스민다. 한국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한여름 쪽방의 실내 최고 온도는 34.9도로,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보다 평균 3도 안팎 높았다.

사업에 실패한 뒤 쪽방촌 생활을 전전한 장 씨도 매년 찾아오는 더위만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체온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데 온 신경을 쏟지만, 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인근 경로당과 금융기관에 무더위 쉼터가 마련돼 있지만 눈치가 보여 10분 이상은 머물기 어렵다. 경상감영공원 그늘 밑에 있는 정자와 벤치가 그에겐 유일한 피서지다.

장 씨는 "겨울에야 날이 추우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지만 여름은 집도, 바깥도 너무 더워 죽을 지경"이라며 "지자체에서 일주일에 두 번 얼음물을 지원해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선 유명무실한 안전수칙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도 온몸으로 폭염과 맞서야 한다. 같은 날에 오후에 방문한 동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색안경에 마스크, 토시까지 중무장한 노동자들 20여 명이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작업을 진행한 지 50여 분이 지나자, 근로자 6~7명이 공사장 한 편에 설치된 그늘막에 모여 휴식을 취했다. 맞은편에는 '근로자 휴게실'로 마련된 컨테이너 한 동이 있었지만, 제법 거리가 있는 탓에 휴게실로 향하는 근로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기온이 높은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3시 반까지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노동자들이 그늘에서 쉬는 시간도 일정치 않았다. 일부는 휴식을 취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날 대구는 폭염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오후 2시 기준 최고기온은 35도, 체감온도는 38도에 육박할 정도였다.

고용노동부는 건설현장 등 실외 작업장에서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작업 장소와 가까운 휴식 공간 마련 ▷시원하고 깨끗한 물 제공 ▷폭염주의보·경보 발령 시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휴식 ▷오후 2시~5시 무더운 시간대 휴식 등 옥외 작업 최소화 규칙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에 그친 탓에 이날 찾은 현장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가뜩이나 장마 탓에 공사를 오래 쉬어 공기를 맞추려면 작업을 멈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현장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휴식 시간은 없지만, 근무자들 스스로 힘들다고 느끼면 쉬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청 관계자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 따라 현장 점검도 하고 작업 시간과 관련한 공문도 보내고 있다"며 "다만 민간이든 공공이든 건설현장에서 특정 시간에 작업을 아예 멈추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최고기온 35도, 체감온도 38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계속된 가운데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노동자들의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김주원 기자
1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최고기온 35도, 체감온도 38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계속된 가운데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노동자들의 작업은 쉼 없이 이어졌다.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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