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운석의 전통주 인문학] <4> 문경 대표 양조장 두술도가

유기농 쌀로 빚은 세가지 맛의 향연
신맛·단맛·쓴맛 균형 잡힌 블렌딩…발효 후 한달 이상 숙성해 부드러워
오미자 생즙 들어간 제품도 인기…그림책 작가와 라벨 디자인 협업
美 엔지니어 출신 귀농 18년 차 부부…친환경농업조합 가입해 본격 생산

귀농 18년차로 친환경농업공동체와 함께 해온 김두수·이재희씨 부부는 마을에서 생산한 유기농쌀인 희양산우렁쌀로 '희양산막걸리' 그리고 오미자생즙을 넣은 '오!미자씨'를 빚고 있다.
귀농 18년차로 친환경농업공동체와 함께 해온 김두수·이재희씨 부부는 마을에서 생산한 유기농쌀인 희양산우렁쌀로 '희양산막걸리' 그리고 오미자생즙을 넣은 '오!미자씨'를 빚고 있다.

지난달 말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거리의 한 고풍스런 한옥에서는 문경 대표 전통주 양조장 세 곳이 참가한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팝업 스토어(pop-up store)는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신상품 등 특정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SNS 인증을 통한 홍보효과를 누리는 걸 목적으로 열리는 임시매장이다. 문경시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 참여한 양조장은 두술도가와 문경주조, 오미나라 세 곳이었다.

◆귀농 18년차, 친환경농업공동체와 함께 해온 부부

이 중에서 술을 생산한지 4년 정도 되는 신생양조장인 두술도가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균형 잡힌 술맛을 내는 양조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주 문경시 가은읍 아자개장터에 있는 두술도가를 찾았다. 장터의 이름인 아자개는 후삼국시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아버지로 문경 가은 지역의 지방호족이었다. 2014년 체험형 문화관광시장으로 선정된 아자개장터에는 옛날 저잣거리를 재현해놓았는데 입구 쪽에 두술도가가 자리잡고 있다.

두술도가 맞은편에 있는 희양상회에서 두술도가의 대표인 김두수(54)·이재희(53)씨 부부를 만났다. 희양산마을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한 친환경농산물과 친환경제품을 판매하면서 카페를 겸하는 곳이다. 귀농 18년차로 친환경농업공동체와 함께 해온 부부는 마을에서 생산한 유기농쌀인 희양산우렁쌀로 '희양산막걸리' 15%와 9%, 그리고 오미자생즙을 넣은 '오!미자씨'를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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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차를 마시며 시작했다. 그러나 따뜻한 차가 식어갈 무렵 어느새 테이블 위엔 희양산막걸리와 오!미자씨가 놓였다. 한 모금 마신 희양산막걸리 9%는 맛이 맑고 담백했다. 단맛을 강조하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드라이한 맛이다.

"처음 입에 술잔을 대면 신맛을 느낍니다. 입에 머금으면 단맛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모금 삼키고 나면 약간 쓴맛이 올라올 겁니다"고 말하는 이재희 대표는 단맛과 신맛, 약간의 쓴맛의 균형 잡힌 술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신맛, 단맛, 쓴맛의 밸런스에 중점

두술도가는 드라이한 술맛을 추구하지만 신맛, 단맛, 쓴맛의 밸런스에 특히 중점을 둔다. 특이하게도 맛의 균형을 잡는 비결은 블렌딩이다. 물론 다른 양조장에서도 발효조마다 다른 맛의 차이를 줄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블렌딩을 한다. 두술도가의 블렌딩은 다르다. 단맛이 나는 술과 달지 않은 술, 신맛이 나는 술을 따로 빚은 후 혼합을 해서 의도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입 안에서는 깔끔한 신맛과 단맛을, 삼킨 후에는 약한 쓴맛이 마무리를 하도록 만들려고 한다"며 "맥주와 와인을 주로 마시는 사람들도 즐겨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어 우리술의 외연을 넓히고 싶다"고 덧붙였다.

희양산막걸리
희양산막걸리

두술도가의 술은 균형잡힌 맛 외에 부드러움도 특징이다. 알콜 15% 막걸리도 향이 살아있으면서 알콜의 날카로움은 없다. 깊은 맛은 입안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이런 특징은 발효 후 숙성에서 온다. 병입을 하기 전에 희양산막걸리 15%는 3개월 이상, 9%는 1개월 이상 숙성을 시킨다. 소비자들은 출고 후 바로 마셔도 이미 숙성된 깊은 술맛을 느껴볼 수 있게 된다.

김두수 대표는 "술은 오래 숙성하면 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며 "내년엔 숙성을 강조한 다른 종류의 술들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두술도가에서 나온 소주와 약주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준비하고 있는 소주의 특징은 증류하기 위한 밑술도 숙성을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밑술을 만들어 소주를 내려 봤지만 그들이 내린 결론은 증류용 막걸리도 숙성을 하면 향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은 작은 양조장에서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김 대표는 "좀 더 향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했다.

◆작가와 막걸리의 만남

두술도가에서 나오는 술 중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있는 술은 희양산막걸리 9%짜리다. 이 대표는 "어떻게 보면 자기 색깔이 없는 술이기에 음식보다 술이 더 강조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려 마니아층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미자씨'도 독특한 방법을 거친다. 처음에 개발 단계에서는 오미자청과 건오미자를 사용해보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오미자생즙을 쓰는 것이었다. 오미자는 다섯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특히 신맛이 강하다. 신맛은 발효를 방해한다. 그래서 오미자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성단계에서 오미자 생즙을 넣는 것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미자씨'는 오미자의 특성을 잘 살려 시원하게 마시게 하기 위해 4월~9월까지만 생산했다. 올해부터는 연중 생산을 한다. 하지만 오미자 생즙을 내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한 명이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생즙을 내는 건 60㎏ 정도에 불과할 정도다. 그래도 편한 길을 마다하고 힘든 길을 걷는다. 맛을 위해서다.

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한 두술도가 막걸리 라벨은 전미화 그림책작가의 그림이다.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하다.
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한 두술도가 막걸리 라벨은 전미화 그림책작가의 그림이다.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하다.

두술도가의 술을 이야기하면서 라벨을 빠트릴 수 없다. 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한 막걸리 라벨은 전미화 그림책작가의 그림이다. 막걸리와 그림책작가와의 협업은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라벨의 디자인이 젊은층의 취향에 맞다보니 막걸리의 라벨만 따로 모으는 사람이 있을 정도가 됐다.

"'작가와 막걸리의 만남'이란 타이틀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처음엔 3~4개월마다 라벨을 교체했지만 지금은 1년 이상 쓸 정도로 두술도가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막걸리라벨 전시회도 꿈꿔 봅니다"

부부는 2년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식 축제에 초청을 받아 두술도가의 술을 시음하기도 하고 술 만들기 체험도 하고 왔다. 현지에서 곳곳에 스며든 한국문화의 가능성을 보고 왔다. "외국에서는 한국술이라면 파란 병의 희석식 소주를 먼저 떠올린다"는 김 대표는 "한국에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대로 발효시켜 맛과 향이 뛰어난 술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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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공동체와 함께 하는 막걸리 꿈

무농약인 우렁쌀로 막걸리를 빚는다고? 처음엔 의아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입쌀을 사용하는 양조장들도 많은데 어떻게 비싼 유기농쌀을 써서 술을 빚고 판매를 할까하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두술도가에선 유기농쌀인 우렁쌀을 1개월에 1t 가량 소비한다. 원가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술을 만들고 배우고 본격 생산하게 된 계기가 마을에서 생산한 우렁쌀을 소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기에 다른 쌀을 쓸 생각은 전혀 없다.

김두수·이재희 부부는 30대 중반에 문경으로 귀농을 했다. 미국에서 반도체엔지니어로 일하던 둘은 생태적 관점에서 미래의 대안을 모색하는 잡지 '녹색평론'을 접하면서 다른 삶을 꿈꾸는 계기가 됐다. 2004년 둘은 미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접고 귀국을 했다. 1년 여 귀농교육도 받고 귀농선배들과 교류하며 추천받은 장소가 문경이었다.

공동체인 '희양산마을영농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술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공동체에서 생산한 우렁쌀은 유기농이었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판로가 부족했다. 김 대표는 처음엔 쌀 소비를 위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빚은 술을 조합원들과 나눠 마시며 제법 많은 양의 술을 소비했다. 이는 새로운 술을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2018년 아자개장터에 양조장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양조장 일은 힘든 일의 연속이다. 소규모 양조장일수록 더하다. "지금 행복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힘들고 때론 스트레스도 받지만 재미있어서 선택한 길입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이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운석
박운석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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