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윤중리(소설가) 씨의 어머니 고 김서운 씨

"효성도 능력도 부족했던 아들…부모님 기억은 늘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윤중리 씨의 어머니 고 김서운(사진 오른쪽 두 번째) 씨가 손자손녀들에 둘러싸여 즐거워하던 한 때를 촬영한 사진. 윤중리 씨 제공.
윤중리 씨의 어머니 고 김서운(사진 오른쪽 두 번째) 씨가 손자손녀들에 둘러싸여 즐거워하던 한 때를 촬영한 사진. 윤중리 씨 제공.

어머니. 돌아가신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아쉬움이겠지만, 저에게는 유난히도 아쉬움과 아픔으로 가득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되어 굶주림과 고된 농삿일 속에서 4남매를 키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리던 저의 눈에도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봄이면 먹을 게 없어서 저 멀리 두무산까지 가셔서 한 보따리 뜯어 오시던 쑥은 우리 여섯 가족의 중요한 식자재였었죠. 그 쑥 보따리 속에 숨겨 오신 송기 몇 가지는 또 어린 저희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셨고.

이웃 면의 중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러 가던 날. 빈티재 고갯길은 멀기도 했죠. 뻐꾸기 울음소리 처량한데, 풀먹인 광목 빤스가 사타구니를 쏠아서 제가 아파하자, 골짜기 개울가에서 벗겨서 돌로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어 입히시던 모습은 지금도 제 눈에 선합니다.

몇 마지기 소작농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이요 슬픔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해마다 흉년이 들고, 봄이면 양식은 바닥나고, 쑥밥과 밀기울 죽으로 살면서도 양반의 체통은 지켜야 한다시던 아버지. 그 안살림이 어찌 아픔이 아니었겠습니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대구 봉덕동의 어느 집 구석방 하나를 얻어 자취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승낙 없이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대학 입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는 예고도 없이 제 자취방엘 찾아 오셨죠. 그때 제게 하신 말씀. "얘야, 대학을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합격은 해라." 그건 당부이기도 하고 절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국민학고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잘해서 늘 1등을 한다고 자랑도 더러 하셨을 것이고, 또 그것이 가난을 안고 이 시간까지 살아온 보람이요 희망이었을 수도 있을 것인데, 대학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소식만은 용납할 수 없으셨겠죠. 대학 합격 전보를 배달하러 온 우체부 아저씨를 점심대접 해서 보내셨단 얘기는 그 뒤에 이어졌었죠.

제 누님 열아홉에 족두리 쓰고 시집가고, 여동생도 저보다 먼저 결혼 했고, 제가 늦게사 당신께 며느리를 데려왔을 때, 그리도 흐뭇해하시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마당에서 부엌에서 방에서 자상하게 새 식구를 대하시던 어머니의 미소를 보면서 저는 이제 조금 아들 구실을 한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살림을 차렸을 때, 부모님 농촌 생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또 평생 농촌에서 사신 분들 도시 맛도 좀 보셔야하지 않겠느냐면서 두 분을 대구로 모셨는데, 어이없게도 아버님은 이듬해 허리를 다쳐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님 당신은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서 손자 손녀 기르는 재미도 조금은 보셨어요. 치근대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항상 기쁨으로 어루만지시던 어머니.

그러나 어느 날 성당에 가시는 길에 쓰러져 입원을 하셨고, 그 뒤로는 늘 병석에 누워계시는 상황이 되고 말았었죠. 부모님 두 분 타고나신 복이 그것이었던가? 그게 아니고 효성도 능력도 부족했던 이 아들의 탓임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부모님 기억은 늘 아쉬움과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해 봄날. 제가 퇴근해서 집에 왔을 때, 어머님은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로 잠들어 계시더군요, 누워 계신 자세가 평소와는 좀 달라서 놀라 체온과 호흡을 확인하고 외출을 했는데, 그게 살아계신 어머님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죠. 이 얘기를 듣고 누가 그러더군요. 부모는 숨을 거둘 때 장남을 보고 가려고 기다린다고.

고향 뒷산, 두 분이 나란히 누워계신 곳. 올 가을에 벌초를 갔을 때, 저도 나중에 여기 두 분 품안으로 오겠습니다 했지만, 종중산이던 여기도 이미 팔려 버려서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하느님나라에서 만납시다. 그때는 못다한 효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운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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